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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등록일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선거 이슈가 별로 떠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공약 1호가 ‘미세먼지 해결’이고, 그 다음이 ‘집값 상승’이라고 합니다. 미세먼지 해결은 국가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이지 지방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리고 집값이 좀 오른다고 모든 일이 해결될까요? 그럼 어떤 이슈가 좋을까요? 2012년의 대통령 선거 직전에는 “교육을 잡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는 말이 있었는데 교육은 어떤가요? 더구나 이번에 교육감 선거도 함께 있으니까요! 요즘은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잘 키우고, 은퇴해서 연금으로 편안한 노후생활을 꿈꿀 수 있는 세상은 아닙니다. 정신건강전문의 하지현은 <불안 위에서 서핑하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인도에 홀로 서 있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그 스트레스는 “예측 가능성과 조절 가능성”에 의해 움직이는데 “세상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흐름이 지속될 때에는 삶의 예측 가능성과 조절 가능성을 올리려는 개인의 노력이 효과적으로 결과에 반영될 수”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그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나라는 존재가 컵이라고 합시다. 컵 안에 물이 담겨 있어요. 이 물이 넘치지 않게 하려고 나는 열심히 컵 안의 물을 관리하면서 컵이 흔들리지 않게 잘 잡고 있는 방법을 배웁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컵이 놓인 테이블의 다리 하나가 짧다면? 그때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컵이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겠죠?”

테이블의 다리 하나가 짧아진 이유는 뭘까요? 인공지능의 출현 때문이 아닐까요? 인간의 지능지수(IQ)는 평균 100이지만 인공지능은 1만이나 됩니다. 100배나 머리가 좋은 비서를 활용할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비서를 잘 활용하면서 자신의 가능성을 키워야만 합니다.

일본의 교육계는 이런 변화에 발 맞춰서 2020년부터 4지선다형 대학 입시인 ‘센터 시험’을 폐지하고 ‘대학 입학 공통 테스트’를 도입했습니다. 새 시험에는 마크 시트 방식의 문제에 서술형 시험이 추가되고, 영어에서는 ‘읽기·듣기’에 ‘말하기·쓰기’가 더해진 4개의 기능을 시험하고, 영어검정시험, 토익, 토플 등 민간시험이 도입됩니다. 수학에서도 서술식 문제가 출제되고, 국어에서도 소논문을 쓰는 능력이 요구됩니다.

대학입시부터 이렇게 바꾼 것은 아동과 학생이 주체적으로 액티브 러닝(배우는 쪽이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형태의 수업)을 통해 사고력이나 표현력을 기를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초연결사회에서 개인이 가능성을 열어가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직업이 자주 바뀔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는 어려서부터 주체적인 학습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따라서 교육은 그런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이걸 효과적으로 반영하려면 객관식 대학입시부터 폐지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생산자인 기업이 대량생산한 제품을 되도록 많은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프레임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만들어진 프레임도 ‘보텍스(vortex)’라는 소용돌이가 한 번 일어나면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지는 세상입니다. 그러니 이제 개인은 어떤 소용돌이가 일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 교육도 그런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마땅합니다.

교육 평론가 이범은 <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에서 “일생 동안 직업을 여러 번 바꿔야 할 확률이 높아졌고, 그때마다 본인이 뭘 배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4차 산업 혁명이 우리 교육에 던지는 화두”가 되는 세상에서 “교육의 초점은 창의력 자체보다는 자기 주도 학습 능력, 특히 본인이 스스로 학습 목표를 설정하는 능력”에 맞춰야 한다며 교과서 자유발행제 도입을 주장합니다.

이범은 인터넷에 검색하면 정답이 나오는 시대에 “자꾸 ‘출제자의 의도’만 따지게 되니 자기 생각을 구성하는 힘을 기르기 어렵”게 만드는 객관식 시험문제도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도 펼칩니다. 객관식은 교권침해의 소지도 있다는 것이지요. 또한 “제로섬 경쟁”으로 “협력적인 인성을 키우는 것을 방해하는 제도”인 상대 평가도 폐지해야 마땅하다는 주장도 전개합니다. 회사에 입사하면 경쟁의 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인 사회에서 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게다가 이범은 최근 학벌과 스펙의 중요성이 낮아진 이유를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경제 구조의 변화, 즉 정부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학연과 같은 ‘연고’의 중요성이 낮아진 것, 둘째는 고용 형태의 변화, 즉 정기 채용해서 교육·훈련 후 배치하는 모델에서 수시 채용해서 즉시 배치하는 모델로의 변화, 셋째는 기존 채용 방식의 결점으로 간주되는 기술적인 문제들, 즉 도련님·공주님의 증가라든가 이직률이 높다는 점 등. 이 세 가지는 서로 상당히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 동시에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학벌과 ‘스펙’의 가치가 예전에 비해 낮아졌다는 느낌이 들죠.”

최근 교육부는 대학입시 개혁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스스로 개혁안을 만들지 못하고 하청, 재하청으로 임해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심각한 학력사회인 일본이 대학입시 개혁을 통해 교육을 근원적으로 개혁하는 것에서 우리도 타산지석의 지혜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학벌과 학력보다 개인의 생존 능력이 중요해지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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