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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 고려대 명예교수·경향시민대학장


 

이번 대선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안철수 현상이었다. 무엇이 그 현상을 가능케 했나. 그것은 기존의 그 어떤 정당도 하지 않았던 문제를 제기한 때문이고, 그 점에서 안철수 현상은 기존 정당들의 실패가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안철수 현상은 기존의 국가 중심적이고 재벌 편향적인 성장정책하에서 누적돼 왔던 청년 문제가 표출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청년들의 사회경제적 생존 문제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된 실존적 고뇌와 위기에 진심으로 반응했고, 그것을 사회적 쟁점으로 만들어 경제민주화, 복지, 교육, 노동 문제로 다뤄질 수 있게 했다. 물론 안철수에 대한 지지를 뒷받침했던 것은 청년세대만이 아니었다. 기존 정당들에 비판적인 유권자 집단 내지 스스로를 중도라고 정의하는 유권자들이 그를 지지했다. 이는 기존 정당들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절실하고도 중요한 문제를 두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적대하는 것으로 일관해 온, 이른바 정치적 양극화 내지 이념적 양극화 현상이 빚은 결과이기도 하다.


(경향신문DB)


 안철수 현상은 두 주류 정당들이 적극적으로 대표하지 않았고 또 할 수 없었던 사회집단과 계층의 투표자들이 두 정당의 규모만큼이나 크다는 것을 실증했다. 흥미롭게도 그것은 보수-진보의 양대 블록을 기준으로 본다면, 주로 진보로 포함되는 민주당의 범위에 강한 충격을 주었다. 오늘의 정치현실에서 안철수 현상은 기본적으로 야권의 문제로 나타났고 그만큼 민주당에 자신의 취약점을 드러내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렇다면, 안철수가 퇴장한 다음, 그를 통해 대표되기를 원했고 그를 통해 분출되었던 커다란 정치적 에너지는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무엇보다도 그 향배가 중요한 것은, 그간의 안철수 현상이 기존 정당체제 밖에서 발생해 하나의 대안 정당 내지 정치 세력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향후 한국 정치의 미래는 정치적 양극화와 원심력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의 문제와 다원화된 사회적 요구를 대표할 정당체제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이 과제는 민주화 이후 진보적 개혁 세력을 하나의 폭넓은 대안 세력으로 결합하는 데 실패해 온 야권에 더욱 절실하다. 아마 이번 선거에서 결선투표제만 있었어도 야권 내 단일화를 둘러싼 불합리한 다툼과 분열의 상처는 훨씬 덜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감정적 분열의 가능성을 피하기 어려운 후보 단일화 문제에 매몰되는 대신 경제민주화나 재벌개혁 문제, 노동시장의 양극화, 복지 확대와 같은 중대 이슈를 둘러싼 비전과 정책 대안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야권 내부에서 경쟁하는 세력들 사이의 후보 조정 문제는, 중대 이슈를 둘러싸고 경쟁한 1차 투표의 결과에 따라 상당 정도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정당체제의 안정적 제도화의 길이 반드시 양당제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양당제는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라, 미국으로 대표되는 오히려 아주 특수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양당제는 강력한 국가 중심주의와 냉전반공주의, 재벌 중심적인 경제구조와 하층 배제적인 사회문화 등 한국 사회의 여러 특징과 맞물리면서, 정당 간 경쟁을 이념적 중간으로 수렴시키기보다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또한 정치엘리트들이 적대적 상호의존 속에서 각자의 기득이익을 강화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등의 부정적 측면도 크다. 그럴 경우 다양한 사회적 요구와 변화가 정당체제를 통해 넓게 대표되고 반영되지는 못할 것이다. 문제를 이렇게 본다면 기존 정당들과는 종류가 다른 새로운 외생정당의 출현을 통해 한국 정치가 좋아지는 경로는 여전히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외생정당으로서의 잠재력을 보여준 안철수와 그의 지지 세력들이 향후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모를 일이다. 아마도 이 문제는 대선 이후 최대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시점에서는 대선 승리를 위해 야권의 최대 동원에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안철수의 미래 선택은 한국 정치의 중심 범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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