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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주에 사는 한 청년은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프로그래머인 그의 휴대폰과 인터넷에 누군가 접근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했다. 게다가 누군가로부터 감시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그는 주위에 고충을 토로했다. 문자메시지, 검색기록, e메일, 친구 목록, 위치정보 등이 새고 있고, 통화내역이나 은밀한 사생활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고.

동네 사람들은 멀쩡하던 그가 음모론적 편집증에 빠졌다고 수군댔다. 순식간에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놀랄 만한 반전이 일어났다. 양심적인 경찰에 의해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게 밝혀진 것. 청년은 감시당하고 있었다. 미국연방수사국(FBI)이 이 지역에 가짜 기지국을 세웠고, 지역 경찰은 그동안 기밀유지서약에 사인을 한 상태였다.

우리는 현실이나 영화 속에서 때로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가짜라고 의심하면서 살아가는 편집증 환자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들은 누군가 자신을 쫓아다니고,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우리는 그들이 일종의 정신병을 앓고 있고, 음모론에 빠져 환상 속에 살아간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정보사회를 살아가는 이 시대에 이 같은 편견은 틀렸다. 우리는 함부로 어느 누구를 편집증이나 피해망상증에 빠졌다고 단정지어서는 안된다. 누군가 가짜 기지국을 만들어 놓거나 혹은 생각지도 못한 첨단도구를 활용해 우리의 일상을 추적하고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환상이 아니라 일상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다.

이미 중국산 TV나 충전기, 스마트폰 등에서는 감시를 가능케 하는 멀웨어가 발견된 사례가 있다. 영화 <트루먼쇼>의 거대한 세트 위에 가짜 세계에서 살아가는 보험회사 직원처럼, 현실이라는 무대에 자연스럽게 놓인 모든 도구들이 감시도구화된다는 상상을 해보시라.

첨단기술로 둘러싼 세상이 결국은 인간을 옭아매기 위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제4혁명,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빅데이터 시대에 우리들은 거대한 정보수집 세트들에 둘러싸이게 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혀 온다. 사물인터넷이나 인공지능 로봇들, 빅데이터 컴퓨터들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주변에 있는 모든 정보를 빨아들이고 수집해 나갈 것이다.

국가안보국(NSA)의 감시와 도청은 강박관념처럼 보인다. 디지털혁명이 이끌어 가는 다음 세계에서도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전 세계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강박 말이다. 보안보다는 감시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고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NSA는 감시프로그램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등의 데이터서버에 접근했다. 그 후 서비스 이용자의 e메일, 여행일정, 신용카드 거래내역, 위치정보 등을 되는 대로 들쑤셔 놓았고, 닥치는 대로 수집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유튜브 사용자들에게 무차별 접근했다는 것은 전 세계 시민들의 사생활과 신상정보가 그들 손아귀에 모두 들어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일상이 그들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듯이 NSA는 이외에도 취약점을 발견하거나 사들여서 표적컴퓨터를 감청한다. 마이크로소프트사 스카이프 같은 전 세계인들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에 백도어를 심기도 한다. 중국도 해킹과 감청소프트웨어, 첨단 도구 등을 통해 미국과 맞서고 있다. 한때 그리스 총리, 국방부 장관, 외무부 장관, 법무부 장관 등 정부 인사 휴대폰 100여개가 도청당했다. 비슷한 일이 이탈리아에서도 벌어졌다. 독일, 브라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경쟁에서 인간은 그저 사이보그나 기계로 인식될 뿐이다. 인간은 그렇게 폐허가 되어가고 있다.

미래에 인간은 어떤 모습과 마주하게 될까.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스마트폰과 마주한다. 아이가 우는 것을 달래기 위한 가장 좋은 장난감은 스마트폰이다. 우리는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모든 정보는 인터넷에 저장돼 있다. 스마트폰은 또 다른 뇌이며 휴대 간편한 제2의 기억장치다. 스마트폰은 곧 인간의 몸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철학을 뛰어넘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공각기동대>의 등장인물처럼 우리의 뇌는 네트워크에 연결돼 사이보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이보그에게 사생활 침해나 프라이버시에 대한 고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유가 미덕인 사회가 될 것이고 개인의 가치는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공각기동대>는 대놓고 “자신을 제약하는 인간성과 정체성을 버리라”고 말한다. 영화는 현실의 인간을 잘 묘사하고 있다. 닮았다, 껍데기가 된 인간들, 인형이 된 인간들, 이미 프로그램화된 인간들이 줄을 지어 행진하고 있는 <공각기동대>의 한 장면은 영혼을 상실한 암울한 우리의 미래다. 그것은 인간을 지배하려는 NSA를 비롯한 정보기관들의 무차별 감시 프로그램 작동으로 인해 폐허가 된 사람들이 군집한 편집증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다.


최희원|‘해커묵시록’ 작가 ,인터넷진흥원 수석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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