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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편의점 900원, B편의점 3000원, 유니클로 2만9000원, 나이키 16만원…. 토요일 아침이었다. 카드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본인이 지금 카드를 사용 중이냐고 물었다. 서둘러 지갑을 꺼냈다. 카드가 없었다. 그제야 카드 도난 사실을 알게 됐다. 카드를 정지시켜줄 것을 부탁했다. 절도범은 정지된 카드로 백화점 컴퓨터매장에서 100만원짜리 물건을 구입하려다, 정지된 사실을 알고 사라졌다고 했다. 그는 ‘간을 보기 위해’ 두 곳의 편의점에서 소액을 사용했고 옷가게와 신발가게를 거쳐, 백화점으로 향했다. 카드사 빅데이터는 평상시와는 다른 소비패턴을 인지하면서 유심히 지켜보는 중이었으리라. 결국 비상상황을 고지했고, 직원이 내게 연락을 한 것이다.

페이스딜스라는 사이트는 고객이 가게에 도착하면 문 앞에 설치된 카메라가 얼굴을 인식한다.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얻은 정보를 기반으로 고객이 관심을 보인 제품, 서비스 등을 알려준다.상업적 측면에서뿐 아니라 국가나 정보기관, 경찰 등 정부기관도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뉴욕 경찰은 곳곳에 설치된 CCTV에서 얻어지는 데이터를 가지고 범죄자의 문신인식을 통해 범죄예방률과 검거율을 동시에 높이고 있다. 원유를 가공해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듯, 정보바다에서 건져낸 데이터 역시 무궁무진한 용도로 활용이 가능하다. 빅데이터는 교육, 의료, 범죄 등 미래를 예측함으로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하지만 빅데이터를 주로 거대 조직이 사용할 수 있는 사악한 힘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시민들의 의사소통을 감시한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활동은 첨단장치가 그들에 관한 정보를 그들만을 제외시킨 채 주고받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빅데이터가 NSA의 소유이고, 미국민은 빅데이터의 종속물이자, 피해자일 뿐이라는 자조 섞인 주장에 동정론이 일고 있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일본이나 에콰도르 국민들이 겪은 진도 7 이상의 지진만이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보기관의 감시, 여론조작, 빅데이터 관련 컴퓨터시스템 오류 및 해킹, 정보유출은 우리가 마주해야 할 또 다른 재앙의 시작이다. 기업은 개인들의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무차별 개인정보 수집을 통해 그 정보를 다른 용도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은 비식별 데이터를 국가나 기업보다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이는 경기변동, 소비심리, 선거결과, 전염병 발생 등을 국내기관이나 연구소, 정부보다 더 빨리 파악,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안전문업체 직원이 악성코드를 이용한 컴퓨터 해킹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_경향DB

미국 정부가 몇 년 전 노후차량 보상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예산 10억달러를 책정, 교체 시 4500달러를 지원해주기로 했다. 구글은 정부가 예산을 발표하자마자 ‘그 예산은 1주일이면 바닥날 것’이라고 예상했고, 예측은 정확했다. 빅데이터 분석에 조작이나 데이터 오용도 위험을 불러들인다. 아마존의 경우 책을 구입하게 되면 그 밑에 ‘이 책을 구입한 사람이 다음 책도 구입했다’면서 여러 가지 책을 추천한다. SNS 기능에 ‘알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명목으로 아는 사람인지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스토커나 특정기호를 지닌 범죄자가 버젓이 연결될 수도 있다.


며칠 전 굴지의 대기업 LG화학이 송금 판매처를 가장한 e메일에 속아 240억원을 해커의 통장에 고스란히 송금한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첨단기술과 첨단장치가 쏟아지고 우리의 미래는 안락해지고 있지만 보안불감증은 심각한 수준이다. 개인정보, 사생활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이마트나 롯데마트 같은 재벌계열사들은 경품행사에 참여한 고객정보를 수십억원에 팔아버렸다. 그보다 세세한 정보가 담긴 ‘값나가는’ 개인정보가 손아귀에 쥐어진다면 그것 역시 언제 팔아치워버릴지 누가 알겠는가. 개인정보보호법이 감시와 제재를 하고 있지만, 교묘하게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개인정보수집이나 불법유통 활동에 대해서는 시민감시가 필요하다. 권력이나 기업들은 비식별 정보를 활용한다고 하지만, 세세한 정보까지 수집, 정보연동을 통해 개인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빅데이터를 암암리에 만들 가능성도 적지 않다.

개인의 세세한 질병내역이나 약점을 쥐고 있으면 중요한 순간에 개인의 표현이나 행동의 자유까지 옭아맬 수 있다. 해킹에 속아 240억원을 송금한 LG화학사건은, 누구든지 시공을 초월해 사이버상에서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 있는 현실을 보여줬다. 빅데이터가 미래예측 가능성을 높이게 될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미래가 마냥 설레기만 하는 건 아니다. 언젠가 빅데이터는 며칠 후, 몇 달 아니 1년 후에 내가 어디에 있을지까지 예측하게 될 것이다. 순찰 중인 경찰은 한갓진 도로로 들어서는 내가 향후 20분 이내에 신호위반을 할 확률이 80%라고 예측하고 위반지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빅데이터가 가져다줄 또 다른 미래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최희원 | ‘해커묵시록’ 작가·인터넷진흥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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