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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 총리관저에 드론이 날아들었다. 드론에는 후쿠시마에서 채취한 모래가 들어 있었고, 미량의 세슘이 검출됐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올 1월 소형 드론이 백악관 앞마당에 떨어졌다. 미국과 일본의 정상이 거주하는 국가 중추기관을 뚫어버린 드론은 물리적 측면에서도 보안에 치명적 허점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만일 총리관저나 백악관에 날아든 드론에 고성능 폭탄이나 심각한 양의 방사성물질이 포함되어 있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일련의 사건을 그저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두 사건의 중심에는 드론이라는 디지털 기기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군용 드론이 아닌 상업용 드론이다. 초기 드론은 사람을 대신해 적지 시찰이나 정보수집, 공격 등 군사 목적으로 개발됐다. 하지만 프랑스 패롯사의 드론은 2011년 성탄절 연휴 때 가장 많이 팔린 장난감 중의 하나였다. 드론의 폭발적 인기를 실감케 해주는 사례다. 그 이후로도 드론의 인기는 식지 않고 있다. 이처럼 원하면 누구나 손쉽게 드론을 접할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추세라면 조금 과장해서 머지않아 각국의 상공에 드론들이 벌떼처럼 날아다닐는지 모른다.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에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관저 옥상에 22일 오전 소형 무인비행기(드론)가 떨어져 있다. 이 비행기에서 방사성물질인 세슘이 미량 검출됐다. _ AP연합



이미 산업이나 서비스 분야 등에서 드론은 발군의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포도나무의 병충해 파악, 양떼를 지키고 양몰이, 강아지 산책 등 농업, 감시, 단순 배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능을 갖춘 드론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드론은 디지털 세계에서 스마트폰에 못지않게 우리 삶에 놀랍고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문제는 드론 스스로의 보안 취약성 때문에 벌어지는 해킹과 사생활 침해다. 특히 상업용 드론은 제품 자체에 카메라가 탑재돼 있어, 날아다니는 CCTV 역할을 한다. 따라서 개인정보 수집과 사생활 침해 문제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닐 수밖에 없다. 드론은 상공을 날아다니면서 비키니를 입고 옥상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여성을 찍고, 창문 등에서 침실과 욕실을 자연스럽게 촬영하기도 한다. 동시에 상공 아래 있는 스마트폰을 해킹하기도 한다. 와이파이가 켜져 있는 스마트폰에 접속, 그 안에 있는 정보와 데이터를 한순간에 빼내는 도둑질을 하기도 한다. 미국의 한 상원의원은 이를 두고 “뉴욕시 상공이 마치 서부 개척시대를 연상케 하듯 드론의 무법지대가 되고 있다”고 표현했다.

또 다른 문제는 드론을 악성코드로 감염시켜, 해커가 하이재킹할 경우다. 나아가 드론에 사제 폭발물을 탑재, 위험한 살상용 폭발물로 만들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도심 한가운데 숨어 있는 테러리스트들은 드론을 신이 준 선물이라고 감사할는지 모르겠지만….

인도의 한 보안전문가가 개발한 ‘몰드드론’이라는 악성코드는 드론을 감염시켜 원격조종할 수 있게 했다. 멀쩡한 드론을 한순간 하이재킹해서 자신의 손아귀에 넣어버린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 바이러스는 드론 납치 프로그램이다. 이 보안전문가는 드론을 해킹, 원격조종하는 모습을 유튜브를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이는 <매트릭스>류의 모든 영화나 소설의 모태가 된 윌리엄 깁슨의 경이로운 소설 <뉴로맨서>에 나오듯 가상의 공간에서 해커가 우리의 신체를 훔쳐 그것에 대한 통제권을 강탈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신체를 자신의 것으로 다룰 수 없게 될 것이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초연결사회는 상호의존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보안에 취약한 링크 하나만으로도 전체 네트워크가 치명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따라서 어떤 디지털 도구라도 보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무인자동차 상용화 등 사물인터넷 시대를 앞둔 상황에서 무인차를 구입, 아우토반을 질주하겠다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은 해킹과 보안 문제 때문이다. 드론 역시 보안이 뚫리게 되면 해커에게 납치된 일종의 ‘좀비 PC’와 다를 게 없다. 사물인터넷 시대에 놀라운 디지털 도구가 하나둘씩 등장할 때마다 동시에 출몰하는 ‘바이러스’와 취약점에 관한 소식은 함께 위기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케 한다.

우리는 드론이 선사하는 획기적인 삶의 변화에 기대를 하고 있다. 더불어 쉴 새 없이 출몰하는 바이러스의 위험을 디지털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한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 드론에 뚫리는 사회, 뚫리는 드론…. 보안은 디지털 세계에서 영원히 해결되어야 할 숙제이다.

최희원 | ‘해커묵시록’ 작가·인터넷진흥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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