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애플은 최근 샌버나디노 총기 난사 테러범의 아이폰 잠금을 해제하는 데 협조해달라는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법원의 명령을 거부했다. 하지만 뉴욕 브루클린 연방지방법원은 지난달 29일 애플이 테러범의 아이폰 잠금장치를 해제해줄 의무가 없다고 정반대 판결을 내렸다. FBI는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FBI가 요구하는 것은 테러용의자 아이폰 암호를 해제할 수 있는 툴이나 소프트웨어다. 애플은 하나의 기기를 잠금해제 할 수 있는 키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것은 모든 아이폰의 암호를 풀 수 있는 만능키를 제작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세계 최대 보안업체 맥아피는 자사가 나서 암호를 풀어주겠다는 황당한 제안을 했다. 10번의 기회(패스워드를 열 번 틀리면 데이터가 자동 삭제되는 기능)밖에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맥아피는 자사를 홍보하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맥아피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상황은 다른 듯 비슷하게 우리나라에서도 연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테러방지법 논쟁으로 국회에서 필리버스터가 이어졌고, 논쟁 또한 뜨겁다. 반대론자들은 테러방지법의 일부 독소조항들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휴대폰 무한감청과 신상 관련 무차별 정보수집권, 조사권 등이 국가정보원의 광범위한 시민감시나 사찰에 대한 면죄부를 주기 위해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의 사생활침해 남발과 국정원 권한강화가 테러방지법의 제정 목적일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우리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자유와 정의의 수호신 역할을 해낸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과정에서 미국 정보기관이 같은 방법으로 유럽연합 지도자들을 도청하고 멕시코와 브라질 주민들의 e메일을 훔쳐보고 유엔 본부와 유럽의회 안에서 e메일을 감청한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애플 최고경영자 팀 쿡이 16일 고객에게 보낸 서한 중_경향DB

시민의 개인정보를 연결한 경찰·검찰의 공유시스템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주민번호와 개인의료 및 범죄정보 등이 공유된 시스템에 개인의 정치성향, 생체정보까지 포함된 국정원 데이터시스템까지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이 시스템은 여타 정보들과 상호연동해 개인의 정체성과 어떤 성향의 인간인지 파악해나갈 것이다. 이처럼 구축된 데이터 시스템에 사악한 권력자나 범죄자, 나아가 테러리스트가 침입, 시스템을 탈취하거나 장악할 경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첨단기업들은 사용자의 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고, 적법한 요청에 바탕을 둔 정보수사기관의 데이터 접근 요청에 따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애플 팀 쿡의 말대로 아이폰의 잠금해제 툴을 요청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이야기다. 첨단기술과 사이버침해, 해킹이 일반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FBI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애플은 큰 위험부담을 안게 된다. 소비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FBI에 제공한 만능키가 지켜진다는 보장도 없다. 테러범죄 조직은 물론 중국, 러시아 등에서는 마스터키를 손에 넣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결국 아이폰 사용자 어느 누구도 감청이나 사찰로부터 안전하지 못한 상황이 올 것이다.

흔히 테러 공격이나 심각한 범죄를 계획하는 이들만이 자기가 하는 일을 숨기고 사생활에 신경써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처럼 평범한 직장을 다니고 집에 와서 가족들과 평화롭게 지내는 이들은 잘못하는 게 없으니 숨길 것도 없고 정부가 우리를 감시하는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 휴대폰 비밀번호, e메일이나 페이스북의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면 정색을 할 것이다.

바이러스나 랜섬웨어나 디도스(분산서비스거부·DDoS) 공격의 피해자가 되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결과적으로 컴퓨터가 먹통이 되거나 데이터가 삭제될 경우, 힘들지만 다시 데이터를 만들고, 컴퓨터를 구입하거나 랜섬웨어 해제비용을 지불하면 된다. 하지만 한번 잃어버린 프라이버시를 되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프라이버시는 인간이 누구로부터 구속이나 침해받지 않고 자유를 누리고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가치다. 전 세계는 애플과 FBI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 이 논쟁은 향후 비슷한 사례에 선례로 남아 판단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희원 | ‘해커묵시록’ 작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