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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정보를 훔치는 해커다. 고용인의 정보를 훔치던 그는 배신의 대가로 신경계가 손상된 채 무력한 날들을 보낸다. 그러던 중 그에게 아미티지라는 미지의 인물이 나타나 신경접합수술을 지원하고 자신의 명령을 따라줄 것을 요구한다. 그는 새로운 고용관계를 맺고 다시 해커로 활동하게 된다. 그는 의문의 고용인이 재벌이 만든 두 개의 인공지능, 뉴로맨서와 윈터뮤트의 명령을 받는 또 다른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윌리엄 깁슨의 21세기 기념비적인 소설 <뉴로맨서> 줄거리의 일부다.

소설에 나오는 두 개의 인공지능, 뉴로맨서와 윈터뮤트는 실재와 가상세계, 영혼과 육체의 총체 등을 상징하는 매트릭스로 완성된다. 최근 인공지능 알파고 열풍은 깁슨의 소설 <뉴로맨서>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인공지능은 제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이다. 이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것은 프로그래밍이며, 이는 프로그래머가 컴퓨터언어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는 어려서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즐겼다. 구글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프로그래머인 동시에 원래 의미로서의 해커였다.

얼마 전 다음카카오에서 김기사라는 내비게이션 프로그램을 626억원에 인수했다. 창의적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 시장은 언제나 호응한다. 잡스는 “모든 사람들이 어린 시절부터 프로그래밍언어를 배워야 한다”면서 “프로그래밍이 생각하는 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페이스북의 전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싸이월드나 아이러브스쿨 같은 사이트는 충분한 저력을 가졌음에도 결국 문을 닫았다. 세계 최초의 사회관계망서비스였지만, 비즈니스 모델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을뿐더러 서버자원 구축 등 서비스의 불안정성이 실패요인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그 어디에도 없는 서비스를 개발했지만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할지 개발자조차 알지 못했다는 거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잡스가 지적한 사고하는 법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미국, 영국, 핀란드 등 선진국들은 소프트웨어 교육에 미래를 걸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컴퓨터 프로그래밍 수업 의무화로 청소년 컴퓨터 프로그래밍 교육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이행 중이다. 현재 우리나라도 중요성을 깨닫고 향후 프로그래밍 수업을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구체적 이행방법에서 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당국에서 하루빨리 교통정리에 나서 프로그래밍 교육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우리는 장시간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관심을 잃었고, 이에 대한 소홀한 정부 대책으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고 가용 인력조차 부족하다는 것이 업계의 진단이다.

애플 CEO 스티브 잡스가 '맥월드 컨퍼런스 엑스포'에서 아이폰을 발표하고 있다._연합뉴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치우기 시작하면서 프로그래머들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음악에서는 아이튠스, 판도라, 심지어는 애니메이션의 픽사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업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지 10여년이 지났고 그 흐름은 계속됐다.

최근 사람들의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은 대부분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는 디스토피아적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십년 동안 인공지능은 체스에서 인간에게 패배를 안겨줬고, 심지어 퀴즈쇼에서도 인간에게 승리했다. 이길 수 없다던 바둑에서조차 4승1패로 인간을 넘어섰다. 그렇다고 해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지배할 수 있다는 가설은 아직 시기상조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노력과 땀이 이룬 성과이지 싸움 상대가 아니다. 우리는 인공지능과의 공존을 도모하는 것은 물론 삶의 파트너로 받아들여야 한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전 이후 정부는 향후 5년간 3조5000억원을 투자해 인공지능 5개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지능정보산업 발전 전략’을 내놨다. 잘한 일이지만, 꼭 이벤트가 있어야 이 같은 갑작스러운 투자와 전략을 내놓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일상에 파고들었다. 무인자동차, 로봇청소기, 번역기, 드론 등은 생활용품으로, 로봇인형이나 로봇애완동물 등은 인간의 파트너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 정도 속도라면 의학, 금융, 구조 등에서 10년 내에 상용화가 가능한 인공지능로봇이 눈앞에 선보일 것이다. 혁신과 창의적 사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의 “전 국민의 프로그래밍 스터디”를 명심해야 한다. 그는 또 죽음을 앞두고 “개발은 머릿속에 담긴 수천가지 개념들을 원하는 결과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새롭고 다른 방식으로 끼워맞추기를 하는 것”이라면서 “이것은 삶의 끊임없는 과정과 다를 게 없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최희원 | ‘해커묵시록’ 작가·인터넷진흥원 수석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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