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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과 가상세계가 현실세상을 밀어내면서 우리는 긴밀히 연결된 네트워크 속에 내던져진 채 살아가고 있다. 원하지 않아도 그것은 이제 숙명이다. 문제는 글로벌 정보망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미래문명을 만들어갈 기술기반이 언제라도 붕괴될 위험이 있다.

각국에서 사이버사령부를 만들고 미래를 준비하는 이유는 국가기반시설은 물론 자국민의 안전을 지켜줘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해킹활동으로 정부, 기업, 군사정보와 관련된 재산권을 침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부의 이전을 이룩한 해킹국가(?)다. 여전히 전 세계 사이버 공격 근원지의 40% 이상은 중국이다. 미국 보안업체 맨디언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상하이에 위치한 3500평 규모 12층짜리 빌딩에 있는 61398부대 본부에는 매일 수천명의 직원이 출근해 전 세계 정부, 기업, 개인들을 해킹한다.

이 부대가 중국 사이버사령부 직할부대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 모든 정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은 중동의 골칫거리였던 이란의 핵시설을 목표로 했다. 나탄즈 원전 관제시스템에 스턱스라는 악성코드를 침투시켜, 오동작을 유도해 원전에 치명적 타격을 가했다. 스턱스넷은 부시 대통령하에서 만들어졌고, 물리적인 공격 없이 이란의 핵시설을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제작됐다.

한 나라의 사이버사령부의 역할은 사실 이런 것이다. 사이버전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한편으로는 정보전쟁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사이버상에서 방어는 물론 공격, 기밀정보 수집 등의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전광석화처럼 적국을 녹다운시킬 수 있는 능력도 갖추어야 한다. 전쟁이 시작되면 교통, 금융, 전력망 그리고 군지휘망까지 한순간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사이버 역량이 그것이다.

이란 등 중동 국가들의 컴퓨터에 침투해 사이버 스파이활동을 해온 플레임 같은 악성코드는 이를 수행했던 대표적인 사이버 무기다. 스턱스넷의 20배 용량에 수많은 기능과 그 정교함은 실질적인 사이버전의 서막을 알려주는 무기로 정평이 나 있다. 플레임의 존재를 파악하는 데만 5년이 걸렸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이처럼 각국은 사이버사령부들을 중심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그들은 직면할 다음번 진주만 공습이 사이버 공격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10여년 전부터 각국이 사이버전을 준비했고, 러시아, 중국, 이스라엘 등은 그때부터 사이버 무기를 개발해왔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도 이미 정교한 첨단 사이버 공격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사이버사령부는 물론 국가안보국 등이 나서 도·감청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 정상들의 통화 내용을 가로챘고, 이를 기반으로 자국민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움직였다. 미국민이 이 같은 불법적인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 세계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정보를 수집하고 현 정세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이처럼 숨막히는 경쟁 속에서 우리의 사이버사령부는 어땠는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정권의 이익을 위해 댓글조작을 통한 여론조작을 한 일 등이 그것이다.

스턱스넷 출현 이후 사이버사령부는 2014년 국회에서 한국형 스턱스넷 개발 계획에 동의했다. 북한의 극도로 고립된 통신네트워크 때문에 우리 실정에 맞는 스턱스넷을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북한의 핵시설들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는 한국형 스턱스넷 개발이 진행되고 있기는 한가. 사이버사령부를 댓글부대로 전락시킨 책임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여전히 한반도전쟁을 운운하는 트럼프나 김정은의 말 한마디에 언제까지 움찔해야 하는가.

물론 사이버사령부 전체가 이 일에 전적으로 매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사이버 테러와 사이버 전쟁 수행을 위해 묵묵히 준비를 하는 사이버 전사들도 있었으리라. 사이버사령부의 주업무는 사이버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된 사령부에서는 댓글부대를 관할하고, 여론조작을 해서 정권유지와 정권의 이익을 위하는 게 우선순위였다.

지난 10여년간 사이버사령부를 댓글부대로 전락시킨 관련자는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참담함을 가져다주었다. 21세기 각국이 사이버사령부를 통해 스파이활동을 하고 기밀정보 수집을 하는 동안 댓글부대 운영과 여론조작을 해왔다는 사실은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 과연 그런 과거를 물려받은 우리 아이들이 21세기 4차혁명시대에 우수한 경쟁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폭풍이 몰려오면서 재앙을 알리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이버사령부의 문제가 아니라 사이버시대 난민으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최희원 인터넷진흥원 수석연구위원 | '해커묵시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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