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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대한민국에 있는 도시들 가운데 가장 큰 도시가 아니라 대한민국 그 자체이다.” 서울은 대한민국 그 자체라는 말은 1960년대에 <소용돌이의 정치>라는 책을 쓴 그레고리 헨더슨의 얘기다. ‘서울공화국’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배경이기도 하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초집중체제를 헨더슨이 본다면 뭐라고 할까? 놀라서 졸도할지 모른다. 우리가 ‘서울공화국’이라고 부르는 서울, 인천, 경기의 면적은 남한 국토 면적의 겨우 11.8%이다. 이곳에 국민의 절반 가까운 인구가 살고 있다. 어디 인구뿐이랴. 내로라하는 회사의 대부분이 이곳에 있고, 절반 이상의 돈이 여기에서 돌고 있다. 좋다는 대학들은 다 이 지역에 있다. ‘사람은 낳아서 서울로 보내라’는 경구는 여전히 유효하여 젊은이들에게는 ‘인’서울이 오매불망의 꿈이 되고 있다.

전북 남원시 대강면 인근 4차로로 확장 완공된 고속도로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공화국’을 제외한 나머지 도시들은 어떤가? 정반대의 모습이다. 대한민국 두 번째 도시, 세 번째 도시라고 자랑하던 부산과 대구의 몰골은 초라하다. 이 도시의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그냥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대거 이 도시를 떠나고 있다. 호남의 주요 거점인 광주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돈도 사람도 기회도 떠나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비유한다. 서울공화국은 영양과잉으로 온갖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는 반면, 서울공화국이 아닌 지역은 영양부족으로 시들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초집중체제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이런 것은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서울공화국에 사는 사람들은 집값도 비싸고, 공기도 나쁘고, 교통도 혼잡해서 힘이 든다고 말한다. 반대로 서울공화국이 아닌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은 좋은 학교도 병원도 없고, 사업을 하려니 돈 구할 데도 없어서 힘이 든다고 말한다. 서울공화국과 서울공화국이 아닌 지역의 차이가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두 개의 나라, 두 개의 국민’이 있다는 자조까지 있다. 이런 형국이 바람직하지 않은 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국가경쟁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서울공화국으로 자원이 집중되고 나머지 지역은 텅텅 비어가는 불균형의 확대는 모든 도시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그것은 또한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역대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균형발전 정책을 실시했다. 그 가운데 돋보이는 업적은 단연코 노무현 정부다. 노무현 정부는 국가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분산해 균형발전을 도모하려고 했다. 이에 따라 작년까지 거의 모든 공공기관이 이전을 완료했다. 공공기관을 이전하면서 전국 십여 곳에 혁신도시를 건설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서울공화국이 아닌 지역 발전에 마중물 역할을 할 것 같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과 혁신도시 건설은 좋은 정책이었으나 여러 광역자치단체에 골고루 기회를 주기 위해서 너무 파편적으로 자원을 분산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서울공화국에 견줄 만한 어떤 실질적 힘을 만들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런 비판은 타당한 것 같다. 우리가 서울공화국이라 부르는 자원의 초집중체제를 수정하는 일종의 국가재구조화의 필요성은 모두가 바라는 일인데, 노무현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과 혁신도시 건설의 한계를 넘어서는 어떤 비전을 만들 것인가는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최근 모색되고 있는 하나의 비전, ‘남부경제권만들기’는 그런 문제의 해답일 수 있다. 서울공화국이라는 일극체제를 일단 양극체제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 비전이 초집중체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 아니겠는가라는 의견이다. 남부경제권만들기란 대구, 경북, 부산, 울산, 경남, 광주, 전남, 전북을 아우르는 경제공동체를 가꾸자는 것이다. 이 지역의 인구는 대략 2000만명이다. 서울공화국에 겨룰 만한 규모다. 이 지역 광역자치단체들이 힘을 합쳐서 그럴듯한 초광역적 비전을 만들어본다면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의 단서를 찾을 것 같다.

최근에 광주와 대구를 잇는 고속도로가 4차선으로 확장됐다. 철도로 남부지역을 연결하는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새로운 공항을 만들자는 구상은 일단 어긋났지만 그것도 남부경제권만들기라는 균형발전 비전의 틀 속에서 더 다듬을 수 있는 여지는 있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발전 전략을 짜서 남부경제권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원의 초집중체제, 즉 서울공화국 일극체제를 양극체제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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