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뵌 지 꽤 됐습니다. 그간 제가 술 마시기를 게을리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따루주막엘 못 갔습니다. 딴지일보에서 일하는 젊은 친구로부터 따루씨가 김어준씨와 팟캐스트를 함께하신다는 얘기를 최근에 들었습니다. 인터넷에서 따루씨를 검색해 보니 그간 활동이 대단하셨더군요. 방송출연과 집필, 특히 수많은 번역! 제가 절필하고 나서 세 해를 놀고먹는 동안에도 따루씨는 그렇게 열심히 사신 걸 알고 놀랐습니다. 따루씨를 따루주막의 ‘파트타임 주모(!)’로만 알고 있었으니, 제가 세상 소식에 이만저만 어두운 게 아니었습니다. 따루주막을 운영하는 것은 부업이고, 글쓰기와 방송 출연이 본업임을 알겠습니다. 이제는 대한민국 클럽에 가입하셔도 될 듯합니다.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하실 때도 이미 대한민국의 셀럽이었지만요.

벌써 오래전에 논파된 이론이지만, 19세기부터 20세기 전반기에 걸쳐 역사-비교언어학자들은 핀란드어와 한국어를 우랄-알타이어족이라는 한 어족으로 묶었습니다. 그들은 그러면서 핀란드와 헝가리, 터키, 몽골, 한국 사람들이 인종적으로 가까우리라고 추정했습니다. 일부 인류학자들은 이 역사-비교언어학자들의 학설을 좇아, 페르시아어로 투란이라 부르는 중앙아시아 어디쯤을 우랄-알타이어족의 본향(Urheimat)으로 추측했고, 아주 오래전 그 지역에서 우랄-알타이 조어(祖語)를 쓰고 살았으리라 상상한 사람들을 투란족(Turanid race)이라 불렀습니다. 그 투란족 일부는 서쪽으로 가 핀란드와 헝가리 등지에 정착했고, 다른 일부는 동쪽으로 가 몽골과 한반도 등지에 정착했다는 거지요. 이 이론에 따르면, 따루씨와 저는 아주 가까운 인종에 속합니다.



물론 투란족이라는 개념이나 우랄-알타이어족이라는 개념은 이제 폐기됐습니다. 우랄족과 알타이어족은 서로 다른 어족이라는 것이 확인됐고, 핀란드어와 헝가리어 등은 우랄족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다수설입니다. 제가 사용하는, 그리고 따루씨도 썩 잘 구사하는 한국어는 당초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것이 다수설이었지만, 지금은 그 기원을 알 수 없는 ‘고아 언어’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아무튼 지금부터 한 세기 전쯤 역사-비교언어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이 핀란드인과 한국인의 혈연적 친연성을 상상한 것은 재미있는 일화입니다. 그러나 핀란드인과 한국인이, 다시 말해 따루씨와 제가, 투란족이라는 한 인종에 속하든 그렇지 않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이 무한한 우주의 한 행성에서, 더구나 한 도시에서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만 해도 따루씨와 저는, 불교식으로 말해, 이미 인연이 있는 거지요.

따루씨는 말하자면 이주노동자입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이주노동자라고 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아주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따루씨는 지식노동자인 것입니다.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은, 그가 설령 따루씨처럼 고등교육을 받은 이라고 하더라도, 대개는 육체노동에 종사합니다. 따루씨가 책을 쓰거나 방송 시사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일종의 지적 노동에 종사하는 것은 따루씨가 핀란드 사람이라는 사실에 빚을 졌으리라 저는 짐작합니다. 핀란드라는 나라에 대한 한국인들의 호감이 작용한 거지요.

한국에 사는 핀란드인 따루씨를 생각하면 이산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유럽어로 디아스포라 말입니다. 따루씨도 알다시피, 디아스포라는 기원 전 6세기의 바빌론 유수 이래 본디 유대인들의 이산을 가리켰습니다. 기독교의 등장 이후에는, 예수에게 저주받은 어느 유대인의 신화가 퍼지면서, 영원히 방랑하는 유대인의 이미지가 생겨났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때부턴가 디아스포라는 민족을 가릴 것 없이 모든 이산을 가리키게 됐습니다. 따루씨도 말하자면 이산자인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자발적 이산이긴 합니다만.

이산이라는 말에는 대체로 슬픈 정조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산은 대개 전쟁이나 혁명 같은 커다란 사변에 따라 불가피하게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러시아혁명과 스페인 내전과 쿠바혁명과 이란혁명 뒤의 망명자들, 베트남 전쟁 종전 뒤의 보트 피플이 그런 예들입니다.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디아스포라가 뭘까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언젠가 소련 붕괴 뒤의 러시아인들이 세계 최대의 디아스포라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설령 그 말이 맞을지라도, 그것이 비극성에선 그리 대단치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이산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사람들이 아메리카로 강제 이주된 것입니다. 유럽인들의 노예무역에 따른 강제 이주 말입니다. 따루씨의 조국 핀란드는 유럽의 식민주의 제국주의에 가담할 처지가 아니었지만, 저는 이 노예무역을 유럽인들이 인류에게 저지른 가장 커다란 범죄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최악의 이산이 아니더라도 이산은 대체로 불행으로 인식됩니다. ‘자이니치’라고 부르는 재일 한인들의 이산, ‘고려인’이라고 불리는 중앙아시아 한인들의 이산, ‘조선족’이라 불리는 중국 한인들의 이산을 다행이라 여길 수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지금 시리아 내전은 수많은 난민을 낳고 있고, 유럽 국가들의 국경은 유례없이 붐빕니다. 긴장된 붐빔입니다. 그 난민들도 이산을 겪는 거지요. 또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을 거쳐 궁극적으로 영국으로 가려는 불법 이민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이산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기근에 떠밀려 영국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떠난 19세기 아일랜드인들도 이산을 경험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 바깥에 산재해 있던 독일인들도 이산을 경험했습니다. 지난 세기 말과 이번 세기 초에는 코소보의 알바니아인들도 이산을 경험했습니다. 흔히 로마니라고 불리는 집시들은 영원한 이산을 겪고 있는 중입니다. 이 중에서 행복한 이산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산이라는 말을 슬프게 만드는 것은 거기 뿌리뽑힘의 정조가 배어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기필코 돌아가야 할 고향이 있는 사람들에겐 타향에서의 삶이 편안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고향에 대한 신화나 집단적 기억을 공유하며, 언젠가 이뤄질 귀향을 꿈꿉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이 세계화 시대에 이산은 하나의 보편적 생활양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따루씨도 자발적 이산자입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인도인들이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미국으로 가는 일도 흔합니다.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이 싼 생활비에 이끌려 필리핀과 동남아시아로 이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의 세계질서는 국민국가 체제로 이뤄져 있습니다. 국민국가 체제 아래서는 자기 조국 바깥에서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외국인이 환대 받는 사회는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외국에서 사는 것, 그러니까 넓은 의미의 이산이 점점 흔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따루씨나 저나, 핀란드인이나 한국인이기 이전에 인간입니다. 다시 말해 개인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국적과 성별을 떠나 개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산이 지금처럼 흔해진 세상에서, 개인주의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루씨도 아시다시피 개인주의는 고립주의가 아닙니다. 그래서 개인주의자는 은자(隱者)가 아닙니다. 공심(公心)의 결여나 비사교성은 개인주의와 무관합니다. 독립된 개인주의자는 개인주의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다른 개인들과 연대합니다. 스마트폰과 태플릿 PC는 그들이 연결돼 있다는 표지입니다. 개인주의는 또 이기주의와도 무관합니다. 개인주의자는 다른 사람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자신의 자유가 멈춘다는 것을 아는 고전적 자유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를 포함한 모든 집단주의는 르네 지라르가 속죄양이라고 불렀던, 또 조르조 아감벤이 호모 사케르라고 불렀던, 박해받는 주변인을 낳습니다. 그러나 이 행성 전체가 인류 개개인의 고향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박해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난민 문제가 유럽을 뒤흔들어놓고 있고, 불법 이민자 문제가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지금, 이산의 보편화와 개인의 등장이라는 화두는 참으로 한가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외계 지성체의 침략을 받기 전엔 세계정부라는 것이 결코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비교적 균질적 문화를 지닌 유럽에서도 유럽연합이 기우뚱거리며 유럽합중국이 시야 바깥에 남아있는 걸 보면, 세계정부라는 것은 어쩌면 몽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발은 땅을 딛고 있더라도 머리는 하늘을 향하고 있어야 조금의 진보라도 이뤄진다는 믿음으로 따루씨께 이런 한가한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산이라는 말에서 슬픔을 걷어냅시다. 우리는 모두 이산자입니다. 근간에 따루주막으로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고종석 |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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