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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모릅니다. 러시아 어딘가에 있으리라 짐작은 합니다. 러시아 당국은 물론이고, 당신을 반역죄나 간첩죄로 기소하려 작심하고 있는 미국 정부도 당신이 어디 있는지 잘 알 것입니다. 당신이 비판한 미국 국가안보국(NSA)과 다섯 개의 눈(Five Eyes)이 당신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을 테니까요. 미국 정부는 당신의 소재를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명국으로서의 이미지, 러시아와의 관계 따위 때문에 당신을 그냥 놓아두고 있을 뿐입니다.

지지난해에 당신이 NSA와 Five Eyes의 전 세계 민간인 사찰을 폭로했을 때, 당신 나라 정부의 부도덕함을 폭로하고 홍콩으로 피신했을 때, 그리고 마침내 러시아에 망명했을 때, 내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당신의 나이였습니다.



당신은 내 큰아이보다 한 살 아래입니다. 살아온 세월보다 살아가야 할 세월이 더 긴 사람입니다. 당신이 살아가야 할 세월은 가시밭길일 것입니다. 당신의 용감한 행동을 기린 로라 포이트러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시티즌포(Citizenfour)>도, 내년 초에 개봉한다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스노든>도, 전 세계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날아드는 사면청원도 당신을 온전히는 자유롭게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너무 젊은 나이에 정의를 안온과 바꾸었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관련된 군사 외교문서를 위키리크스에 전달한 탓에,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감옥 생활을 하고 있는 브래들리 매닝 일병(아, 그가 자신의 여성정체성을 선포했으니 이제 첼시 매닝이라고 해야 하겠죠)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들은 용기있고 정의로운 사람들입니다.

극소수 진보언론을 제외한 서방언론 대부분이 당신에게 반역혐의를 걸어 십자포화를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그 극소수 진보언론마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정부의 압력에 굴복해 ‘고밀도(高密度) 감시사회’라는 의제를 시나브로 주변화하고 말았습니다. 젊은 당신의 싸움은 길어질 것이 틀림없고, 그 싸움에서 당신이 이기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흔히 FVEY라 부르는 Five Eyes는 당신도 잘 알다시피, 오스트레일리아와 캐나다와 뉴질랜드와 영국과 미국을 아우르는 정보동맹입니다. 당신의 폭로에도, 미국을 주축으로 한 이 다섯 나라의 정보동맹은 굳건할 것입니다.

에슐론이든 프리즘이든, Five Eyes가 당신의 폭로로 개과천선을 하거나 치명상을 입어 민간인 감시 활동을 멈추지는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당신이 이 나라 정보기관들의 불법활동을 폭로하고 쫓기는 몸이 된 뒤에도, NSA가 동맹국 시민들과 정부수반들을 계속 도청해 왔음이 속속 드러났습니다. 누군가가 풍자했듯,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첫 번째 대통령 후보 시절 써먹었던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Yes, we can)”를 “우리는 감시합니다(Yes, we scan)”로 바꿔버린 것입니다. 이 세계 최고의 권력자가, 미국과 세계를 위해 많은 좋은 것을 이뤄낸 이 권력자가, 불행하게도 감시사회에 대한 감수성은 무딘 듯합니다.

1984년이 백남준씨의 경쾌한 비디오 아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시작했을 때,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묘사한 음산한 감시사회는 작가의 지나친 비관주의가 빚어낸 군걱정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오웰은 옳았습니다. 옳은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소설 <1984>는 묵시론적 예언처럼 소름을 돋게 합니다. <1984> 속의 감시국가 이름은 오세아니아입니다. 소설 속에서 오세아니아는 미국이 영국을 합병해서 만든 나라로 설정됩니다. 그런데 Five Eyes를 이루는 다섯 나라가 바로 그렇습니다. 오세아니아는 해양국가라는 뜻입니다. 미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영국은 밀접한 동맹관계에 있는 해양국가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해양국가들이, 이 ‘오세아니아’가, 밀접한 정보동맹을 구축해 제 나라들과 전 세계를 감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현실 속의 Five Eyes는 오웰의 <1984> 속 오세아니아와 섬뜩하게 일치합니다.

또 하나의 해양국 일본이 거기 포함되지 않은 것도 신기합니다. 인종 차이는 있으나, 일본은 미국에게 다른 네 나라만큼이나 가까운 동맹국입니다. 그런데도 정보동맹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습니다.

소설 <1984>에서 일본열도가 오세아니아가 아니라 이스트아시아에 포함돼 있듯 말입니다. 오웰이 귀신이라도 들렸던 것일까요?

당신의 용감한 내부 고발 덕분에, 우리들은 프라이버시가 거의 없어진 세상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프라이버시는 종말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듯합니다. 정부나 거대 기업에는 시민들의 프라이버시 세목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감시하고 통제합니다.

NSA를 중심으로 한 Five Eyes에게는 테러를 막는다는 커다란 명분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 감시체계 덕분에 우리가 좀 더 안전하게 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프라이버시가 가장 밀도 있는 자유의 공간이라는 것을 모르는 체합니다. 거대 기업들 역시 감시체계가 정보 절도를 막는 데 효과적 역할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정보 절도를 막기 위해 정보를 절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들은 유리벽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죠. 우리 모두가 <1984> 속의 윈스턴 스미스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연방 대법원 판사를 지낸 루이스 브랜다이스라는 이를 당신도 아시겠지요. 자유주의적-진보적 판결들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법적으로 지원한 분입니다. 물론 그가 루스벨트 대통령을 추종하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초기 뉴딜 정책의 뼈대 노릇을 했던 전국산업부흥법이 입법권을 행정부에 부당위임했다는 이유 등으로 그 법에 위헌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그를 연방대법관으로 지명했을 때, 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여론도 꽤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당신처럼 용기있고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브랜다이스 판사는 동료 올리버 웬델 홈스 판사와 함께 표현의 자유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이기도 했지만, 이미 34세의 젊은 나이에 ‘하버드 법률 리뷰’지에 <프라이버시권(Right to privacy)>이라는 논문을 써 사생활이 인권임을 처음으로 명시한 법률가였습니다. 브랜다이스 판사에 따르면 프라이버시권은 자연권이었고, 홀로 남겨질 권리(right to be left alone)였고, 남의 관심을 받지 않을 권리였습니다. 브랜다이스 판사가 프라이버시권이라는 개념을 확립한 1890년엔 프라이버시가 인권이라는 생각을 법률가들 대부분이 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말의 브랜다이스 판사가 초첨단 IT 기기들의 힘으로 이뤄진 오늘날의 고밀도 감시사회를 예견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때 이미 사생활권이라는 것의 중요함을 인식했습니다. 브랜다이스 판사는 정보통신 기술이 아주 유치한 단계에 있던 그 시절에, 이미 권력과 자본이 개인들의 프라이버시를 해칠 것을 우려했던 것입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에 해당하는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 IT 기업에서 기계들을 사들여 민간인들을 감시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인 바 있습니다.

얄궂은 것은 당신의 망명지가 러시아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물론 미국의 동맹국들이 당신의 망명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불가피하게 생긴 일입니다. 러시아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전용기에 당신이 몰래 탔다는 잘못된 정보를 입수하고, 프랑스와 포르투갈 정부에 압력을 가해 그 비행기가 그 나라들의 영공을 통과하지 못하게 했을 정도로 당신을 체포하려는 미국 정부의 의지는 강했습니다. 결국 볼리비아 대통령은 오스트리아의 빈 공항에 착륙해 자기 비행기에 당신이 탑승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지요. 이것은 당신의 조국 미국이 그다지 우아한 외교를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불가피했다 하더라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치하의 러시아가 오바마 대통령 치하의 미국보다 훨씬 악화한 감시사회라는 것은 당신도 나도 인정할 것입니다.

내가 당신의 처지에 놓였다면, 더구나 내가 당신처럼 젊었다면, 나는 당신이 보여준 용기를 도저히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미국 정부와, 더 넓게는 Five Eyes와 개인의 싸움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지금으로선 또렷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쉽지는 않겠지만, 당신과 당신의 친구들이 이기기 바랍니다. 경의를 표할 대상이 또 한 사람 있습니다. 프라이버시권이라는 것을 처음 생각해낸 위대한 법률가 루이스 브랜다이스입니다. 오늘은 그분의 74번째 기일입니다.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든, 브랜다이스 판사에게 표하는 경의를 나와 나누기 바랍니다. 당신의 친구로서, 당신의 언어로 당신을 격려하는 걸 허락하시기 바랍니다. Hang in there, Ed!


    고종석 |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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