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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콜트와 콜텍

opinionX 2019. 4. 25. 11:05

‘콜트콜텍’은 오랜 시간 동안 나에게 너무 익숙하고 안쓰럽고 분노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사람에게는 튼튼한 벽과 지붕이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내가 콜트콜텍의 해고노동자들을 목격했던 곳은 죄다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시내 한복판 한쪽에 자리 잡은, 너무나도 빈약해 보이는 천막이었다. 그리고 그 목격담은 마치 유령처럼 장소를 옮겨가며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제야 그 지난한 투쟁이 콜트와 콜텍의 공동투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3년 만에 사측으로부터 ‘유감 표명’과 ‘합의금’을 받게 된 것은 1988년에 설립되고 통기타를 만들던 콜텍이고, 1973년에 설립되어 전자기타를 만들던 콜트에서 해고된 노동자는 여전히 대법원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2012년 대법원은 콜트의 노동자들이 부당해고를 당했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공장으로 돌아간 그들은 3개월 만에 다시 정리해고를 당했고, 콜트는 국내 공장을 아예 정리해버렸다. 다시 진행된 소송에서 대법원은 1심과 2심 판결을 뒤집고 2017년 5월 “국내 공장이 없어 부당해고에 대한 구제 실익이 없다”는 사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후에 밝혀진 것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이 사건을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박근혜 정권과의 재판거래 대상으로 분류해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콜트는 여전히 멈출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한다.

4464일간 이어진 국내 최장기 투쟁 사업장 콜텍 노사가 정리해고 노동자의 ‘명예 복직’에 합의한 22일 임재춘 콜텍지회 조합원(오른쪽)이 서울 강서구 등촌동 콜텍 본사 앞 농성장에서 42일 만에 단식을 풀며 김경봉 조합원과 눈물을 흘리고 있다. 권도현 기자

여전히 어떤 이들에게는 이해가 안 가는 일일 수 있다. 사람들은 평생을 일하면서 살지만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여전히 드물다. 사장이 고용한 사람을 마음대로 자르는 것은 아직도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고, 심지어 공장을 뜯어 외국으로 나갔는데도 해고노동자들이 투쟁을 벌인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근대적 고용관계가 생겨난 이후 노동자들은 단지 더 많은 돈을 위해서만 싸운 것이 아니라, 이윤추구를 위한 자본의 자의적인 결정들에 맞서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권리를 얻기 위해서도 싸웠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유명한 구호는 기업과 경영자들이 한낱 숫자로 취급하며 잘라내는 게 한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멀쩡히 흑자를 내며 잘 운영되던 기업이 어느 날 갑자기 경영상의 이유를 대며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은 콜트와 콜텍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아직도 너무나 많은 ‘사장님’들은 기업과 장롱 속 금송아지 사이의 구분을 못한다.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한국 사회에서 기업은 재산이다. 하지만 동시에 기업은 교육, 환경, 법과 제도, 경제정책을 비롯한 영역에서 사회와 상호작용하고, 그 속에서만 작동할 수 있는 조직이다. 

그러나 20세기 말 이후 자본주의는 기업과 자본에는 깃털과 같은 자유로움을, 사회와 노동자들에게는 더 무거운 짐을 지우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자본과 기업의 방만함이 위기가 되어 돌아오자, 그들은 부끄러움도 없이 사회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2018년 세계은행은 한국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 중 5위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노동하기 좋은 나라에 대한 통계는 세계은행에서 나오지 않는다. 대신 2019년 국제노동기구(ILO)는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저임금 여성 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다고 발표했으며, 한 글로벌 컨설팅 업체는 한국을 OECD 국가 중 여성이 일하기 가장 안 좋은 나라로 꼽았다. 

이 격차가 말해주는 것이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당면한 사회문제들의 상당수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13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버티며 투쟁해온 콜텍 노동자들은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투쟁에 나선다. 이인근 지회장은 “자본들은 오래 버티면 노동자들이 떠나간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법칙을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콜텍에 축하와 감사를, 그리고 콜트에는 간절한 기원을 보낸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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