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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정동칼럼

쿠오바디스

opinionX 2022. 4. 8. 10:27

‘정의와 공정’ 그리고 ‘청년과 미래’를 내세웠던 윤석열 당선인이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한덕수씨를 새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 지명했다. 그런데 한 후보자 지명이 윤 당선인이 표방한 능력과 공정이라는 인선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드물고, 오히려 여소야대 국회에서 인준을 위한 정략적 행위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덕수 후보자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활동하며 거액의 고문료를 받았고,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S(투자자 국가 간 소송)에 증인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국회 인준 청문회에서 한 후보자가 김앤장의 고문으로 활동한 내역과 ISDS에서 실제 증언 여부와 내용이 확인되어야 한다.

그런데 론스타 논란을 접하면서 2007년에 원더걸스가 부른 ‘아이러니, 말도 안 돼’라는 노래 가사가 문득 뇌리를 스쳤다.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불법 매각한 사건 수사를 극화한 영화 <블랙머니>의 주인공 검사가 윤 당선인을 떠올린다는 평이 있었는데, 론스타와 관계가 깊은 김앤장이나 경제관료 출신들이 윤 당선인 주위에 유난히 많다.

‘아이러니, 말도 안 돼’라는 가사를 떠올리게 되는 또 하나의 장면이 있다. 인수위원회에 민원을 전달하거나 인수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사진이다. 인수위 사무실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부터 각종 바리케이드와 경찰들의 인의 장벽으로 인해 국민과 인수위는 단절되어 있었다. 물리적 근접성이 소통에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는 윤 당선인의 설명과는 너무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국방부 청사 자리로 옮기는 대통령 집무실에 대한 경호가 인수위 사무실 경호보다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청년과 미래를 강조했던 윤 당선인이 이른바 과거 관료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인수위를 꾸렸고 내각 구성도 그럴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아이러니, 말도 안 돼’라는 가사가 다시 귓가에 울린다. 물론 청년과 미래를 중시함이 자격 없는 사람을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앞장세우는 ‘광대놀음’과는 달라야 한다. 핵심은 정책에 대한 비전과 이해이지, 담당자의 나이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과거 성공적이지도 못했던 정권에서 정책을 담당했던 관료들이 그동안 급속히 바뀐 정책 환경에서 청년과 미래를 위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관료는 하던 일을 관리하는 것에 특화되기 마련이고, 새로운 것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것은 체질적으로 맞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만약 윤 당선인이 전두환이 1980년대 초에 경제 관료들에게 정책을 일임해서 경제 안정화 조치를 성공적으로 거두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현재 우리 경제 및 사회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와 사회는 대변혁의 파도에 휩싸이고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도도한 물결은, 2000년대 ICT 혁명과 중국의 부상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2000년대 ICT 혁명과 중국의 부상은 우리에게는 좋은 기회 요인이었다. 그러나 탄소중립 혁명은 중화학공업 중심의 한국 제조업과 수십에서 수백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의 경직된 소유지배구조에 대한 엄중한 도전이다.

탄소배출량당 부가가치생산을 나타내는 지표인 탄소생산성이 저개발 국가들까지 포함한 세계 평균에도 못 미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경제성장률은 탄소생산성 증가율에서 탄소감축률을 뺀 것으로 계산될 수 있는데,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따라 매년 4% 정도씩 탄소를 감축할 때 4% 이상 탄소생산성이 증가하지 않으면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가 된다. 바꿔 말해, 경제성장을 하면서 탄소 생산성을 4% 이상 증가시키지 못하면,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저탄소 경제로 전환에 실패하면, 중화학공업 중심의 한국 제조업은 탄소세 등의 탄소가격제로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고 좌초자산(stranded asset)의 급증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린산업으로 전환 없이는 탄소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산업전환은 많은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청년과 미래를 생각한다면, 무엇보다 산업전환이 용이하도록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최소화하는 제도 개혁과 노사정 신뢰 회복에 새 정부가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 윤석열 정부 5년간 제대로 준비하고 전환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를지 모른다. 쿠오바디스(Quo vadis), 윤석열 정부?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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