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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박정희 대통령부터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통령은 ‘국민통합’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런데 모든 대통령은 ‘국민통합’에 실패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반대자나 비판자를 전향·투항케 하여 동일집단화하는 것을 국민통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국민통합에 참여하는 일은 변절을 의미하는 것이니 그 자체가 께름칙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이럴진대 어떤 국민통합이 성공할 수 있었겠는가?
국민통합은 국민이라는 이름의 단일집단화가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이 공존·상생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해야 한다. ‘국민’은 한 덩어리의 사람들이 아니라 각양각색의 사회정치적 실체로 이루어진 존재다. 그리고 서로 인정하고 다름을 관용하며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이 공화주의 국가의 국민이다. 그렇기에 ‘하나’가 되자고 하는 순간 국민통합은 신기루가 되어버릴 것이 분명하다.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중세의 분절된 봉건체제를 하나의 시장과 권력체제로 만들어가는 근대 국민국가형성 시기의 국민통합이 아니다. 하나의 주권은 이미 만들어져 있고 그 속에 사는 존재들이 차별 없이 서로 존중하며 어우러지는 국민통합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이런 국민통합은 자리잡기 어려웠다. 국민통합의 역설이라고 할까. 국민통합을 내건 국민분열이 계속되었다. 이승만은 북한과 싸우려면 국민통합을 하자고 했는데 그것은 결국 반대자를 숙청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구였다. 박정희도 경제성장을 하자며 국민통합을 기치로 내걸었는데 그것도 비판을 억누르면서 국가주의적 망탈리테를 조장하는 동원 기제였을 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통합위원회 첫 미팅에 나와 ‘전시와 같은, 경제 위기 때문에’ 특히 국민통합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순간 깜짝 놀랐다. 이승만·박정희 시대의 ‘동원된 국민통합’ 담론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윤 당선인의 국민통합에 대한 이해는 그것은 아니었다. 그는 분단과 지역주의, 그리고 소선거구제와 다수결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두 진영의 대결이 나라를 두 동강이로 만들고 그것이 끝없는 대결과 적대 정치의 원인이라는 생각을 선거운동 기간에 피력한 바 있다.
이 또한 국민통합의 역설이다. 이번 선거는 역대급 비호감 선거였고 내전 같다고 할 정도로 치열한 적대적 대결 과정이었는데 국민통합이라는 가치가 가장 많이 거론되었던 선거였다. 이제 우리는 국민통합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선거운동 막바지에 나온 세 개의 문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민주당 의원총회 결의문(2·27), 둘째는 종교사회지도자 19인 긴급제안(3·1), 셋째는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선언문(3·3)이다. 세 문서를 관통하는 열쇠개념은 국민통합이었고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국민통합은 지상의 과제라는 것을 깨우치는 결의였다. 여기에 제시된 과제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다. 그 가운데 몇 가지 점을 환기한다.
첫째, 국민통합을 주도하고 이루어야 할 책임은 승리한 쪽에 더 있다. 국민통합위원회의 역할에 눈이 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민주당 비상지도부도 국민통합 약속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는 소식은 고무적이다. 둘째, 인수위원회는 앞서 말한 세 개의 문건에서 공통된 개념들을 빨리 정리하여 실천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윤석열 당선인 측과 민주당 모두 짭짤한 배당 수익을 나누어 가질 것이다. 셋째, 특히 안보, 방역, 민생 분야에서 ‘초당적 협력기구’를 서둘러 만들어 협치의 틀을 만들기 바란다. 이 세 가지 협치 테이블을 바탕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고 서로 사는 정치를 모색하기 바란다.
윤 당선인은 엉거주춤 지방선거 분위기에 휩쓸리며 여의도 정치 문법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란다. 지방선거에 이겨야 국정운영의 기틀을 만들 수 있다는 영양가 없는 말에 현혹되지 말기 바란다. 국회 의석 숫자와 국정운영의 주도권은 다른 일이라는 것을 잘 보지 않았는가? 지금의 권력구조를 분할정부(divided government)라고 한다. 행정부, 입법부를 서로 다른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을 말한다. 이 간단치 않은 상황을 헤쳐나가려면 윤 당선인은 눈을 크게 떠야 한다. 담대한 협치 실험을 해야 한다. 협치라는 개념이 생소하면 두 개의 국내사례를 소개하겠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민주당 이기우 부지사 등과 도정을 풀어나갔고, 권영진 대구시장은 민주당 출신 홍의락 부시장과 시정의 어려움을 해결한 바 있다. 전자는 당 조직 차원에서 후자는 지도자 수준에서 이룬, 주목할 만한 보수진영의 작지만 의미 있는 협치 실험이었다.
김태일 장안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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