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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통령 취임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용산 이전의 적절성은 더 이상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용산 시대가 무엇을 담아낼 것이냐가 중요해졌다. 공약을 실현하는 과정과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통해 그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공약은 권력 위임을 조건으로 국민과 맺는 계약이므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 하지만 계약은 당사자가 원하지 않으면 바꿀 수 있다. 계약상의 갑이 함부로 계약을 파기하면 갑질이다. 이론적으로 공약의 갑은 주권자이지만, 위임된 권력이 여당과 당선인에 속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갑은 여당과 당선인이다.

그러나 을이 원한다면 그 계약은 수정되거나 파기되어야 한다. 상대적 약자인 을이 계약 파기를 원한다는 것은 계약을 유지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더 적거나 피해가 더 큰 상황이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계약으로 인해 이해관계자들에게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보상을 통해 계약 실행을 보완하지 않는 한, 계약 자체를 파기해야 한다.

여성가족부 관련 공약에서 을은 여성이다. 여성은 유권자 혹은 국민의 일부로 선거에 참여했으므로 독자적 계약 당사자는 아니다. 선거라는 계약 체결에서 여당과 당선인에 대응하는 당사자는 유권자나 국민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계약 당사자의 일부임과 동시에 핵심 이해관계자가 된다. 여성이 원하지 않는다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파기되거나 수정되는 것이 마땅하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공약의 하나였으나, 용산 이전은 광화문 이전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수정된 내용이다. 공약을 지키려는 노력을 보이되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계약 당사자의 일방에게만 이익이 되거나 쌍방에게 손해가 되는 방향으로 수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도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용산 시대에 담아내야 할 새로운 정치는 탈이미지와도 관련된다. 우선 남성 가부장적 이미지를 벗어나야 한다. 이미 선거 분석에서 제시되었듯이 성별 갈라치기로 인해 20, 30 여성들로부터 외면당했다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단체 시위에 대한 대응도 갈라치기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이 갈등의 당사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아니라, 장애인과 정치권이다. 그동안 수차례 거듭된 장애인 인권 법안들이 유예되고 예산조차 삭감된 것에 대한 장애인들의 분노가 시위로 나타난 것이다. 갈등의 당사자들이 장애인과 시민은 더더욱 아니다. 국민의힘이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에 속하면서도 이를 회피하고 다른 구도로 몰아가려 하는 것은 갈라치기이자 호도이다. 오히려 장애인 인권을 외면한 현 정부와 국회를 비판하면서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벗어나야 할 세 번째 이미지는 검찰총장 이미지다. 정치 검찰과 검찰 특권의 폐해가 심각한 나라에서 직전 검찰총장이 대선에 출마해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것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검찰 개혁의 논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검찰총장 재직 당시 윤석열 당선인은 검찰 개혁에 저항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검찰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 대선에 출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전직 검찰총장이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처신해야 한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검찰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친·인척 비리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과 주변에 대해서도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권력을 가진 자의 작은 실수는 약자들에게 치명적 피해를 입힐 수 있으므로 오히려 더 엄격해야 한다. 검찰총장으로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정의에 충성했다고 자랑스러워한다면, 이제는 대통령으로서 특정 집단이나 친소 관계에 매이지 않고 국민에 충성해야 할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이 악은 평범하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생겨날 수 있고 누구나 빠질 수 있다. 사유와 성찰이 없는 삶은 악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무엇이 옳은지, 자신의 행동에 잘못된 것은 없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역지사지나 타자 되어 보기가 중요하다. 특히 약자의 입장에 서 보고 그들과 소통해야 한다. ‘생각하지 않고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고 했다. 집권한 후 성찰하고 소통하지 않은 정치인들이 초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권력의 화신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보아 왔다. 용산의 계절이 희망을 떠받치는 치세가 되기를 국민은 바랄 것이다. 약자의 처지가 되어 보는 것에서 희망의 정치는 시작된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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