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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며 은행나무문(門)에 속하는 유일한 종인 은행나무는 암수딴몸이다. 암나무와 수나무가 있다는 뜻이다. 소나무처럼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 있는 암수한몸이 식물엔 흔하지만 동물에선 암수딴몸이 대세다. 어류나 파충류에선 짝짓기를 안 하고도 새끼를 낳는 처녀생식 개체가 가끔 발견되지만 포유류는 필히 암수가 짝짓기를 해야 한다.

흔히 털과 젖으로 표상되는 포유동물은 자궁에서 아이를 키운다. 그런데 쉽게 잊히는 생물학적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태아를 키우는 장소가 한쪽 성에 치우친다는 점이다. 암컷 포유동물은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투자해야만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암컷과 수컷의 생식 전략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왜 그런지 조목조목 따져보자.

인간을 포함해 처녀생식을 하지 않는 포유류 동물 세계에선 암수 두 성에서 비롯한 유전자, 즉 난자와 정자가 필요하다. 두 세포가 만나 하나의 수정란이 되면서 인간 생식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수정란은 보면 볼수록 놀라운 세포다. 난자와 정자는 결코 간세포나 신경세포가 될 수 없다. 최종 단계까지 분화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정란은 모든 세포로 거듭날 수 있다. 이를 수정란이 전(全)형성능을 가졌다고 말한다. 양성(兩性)에서 유래한 두 종류의 세포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 전형성능을 획득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과학자들은 추측한다.

수정란이 거듭 분열해 그 수가 200여개에 이르면 이들 집단은 기능이 다른 두 종류의 세포로 분화한다. 하나는 태아가 될 세포들, 다른 하나는 태반이 될 세포들이다. 그렇다. 태반은 엄마가 아니라 태아가 만든다. 각별한 형제라 해도 그들이 사용했던 태반은 다르다. 따라서 장차 여성으로 자라날 태아가 한동안 사용할 태반은 암태반이다. 태아와 태반이 같은 수정란에서 발원한 까닭이다. 수태반을 사용하는 태아는 반드시 남자아이가 된다. 이때 암수 사이엔 미묘한 이해관계의 충돌이 일어난다.

인간의 태아는 약 아홉 달 동안 태반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두툼한 태반은 엄마와 태아 순환계가 만나는 경계면 역할을 한다. 엄마와 태아의 혈액은 태반을 경계로 가까이에서 서로 영양분과 노폐물을 교환한다. 포도당이나 미네랄과 같은 영양소를 얻은 태아는 대사 폐기물을 어미의 순환계로 보내 제거한다. 수컷 포유류는 수태반을 통해 가능하면 태아를 크고 건강하게 키우려 한다. 그 일이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에게 전달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면 암컷 포유류는 미래에 있을 또 다른 생식에 대비해 자원을 안배하려 한다. 여러 명의 태아를 두는 일이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서로 상충하는 이해관계는 암태반과 수태반의 크기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사람에게서 간혹 발견되는 포상기태(胞狀奇胎)라는 임신 증상은 암수 이해관계가 각기 다르다는 점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태반과 액체가 들어찬 덩어리가 가득한 기태 구조물은 수정 후 약 5개월이면 자연 유산되지만 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기에 수술로 제거한다고 한다. 과학자들이 이런 기이한 태반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는 사뭇 놀랍다. 어떤 이유로 핵이 사라진 난자에 정자가 들어갈 때 포상기태가 생긴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난자의 핵이 없으면 대신 수정란은 정자의 유전자를 두 벌 복제해서 손실을 만회하고자 한다. 우연히 정자 2개가 핵이 없는 난자에 들어가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다. 암수의 유전자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수정란은 정상적인 태아로 자라지 못했지만 태반의 크기만은 엄청나게 커진 것이다.

포상기태 사례에서 보듯 우리는 비록 이해관계가 다르다 해도 태아를 만들 때 반드시 난자와 정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난자에서 온 유전자는 엄마에게서, 정자에서 온 유전자는 아빠에게서 왔다는 신호를 충실히 전달한 것이다. 암수 태반이 바로 그 증거다. 생식생물학은 엄정하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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