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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지난 6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됐지만, 세계는 여전히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 그러나 그 관심은 클린턴의 우위 속에 트럼프에게도 여전히 기회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만에 하나 그의 당선이 가져올 불가측성과 파괴력 때문일 것이다.

성격은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전·현직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이 개인 성격과 성장 배경에서 나왔음을 익히 보았다. 트럼프의 인생은 부동산 치부로 실리에 밝고 엔터테이너 기질로 드라마틱하다. 그의 주한미군 철수 발언은 방위비를 더 내라는 뜻이며, 김정은과의 대화 가능성은 ‘서프라이즈’ 예고편이다. 대통령이 되면 막말과 돌출 행동은 줄겠지만 정책은 그대로일 것이다.

그의 ‘미국 우선주의’ 외교는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실상은 고립주의다. 각국은 셈법에 분주하다. 동아시아 경쟁자 중국에는 실보다 득이다. 첫째, 미국식 체제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 검증되지 않은 선동가에게 열광하는 미국의 민낯을 보았다. 오히려 수십 년 걸리는 중국식 지도자 양성시스템이 그럴듯해 보이게 한다. 둘째, 오바마의 스마트외교로 고전했던 중국이 외교 전열을 재정비한다. 트럼프는 존중보다는 압박으로 상대의 반감을 유발하는 스타일이다. 트럼프 외교는 거칠었던 부시의 카우보이외교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의도 여부를 떠나 트럼프의 변덕스러움은 시진핑 외교의 약점과 실수를 덮을 것이다. 시 주석은 트럼프가 상대적으로 훨씬 덜 부담스럽게 여겨질 것이다. 셋째, 중국의 신질서 수립을 위한 환경 조성에 도움이 된다. 이해타산에 밝은 트럼프에 비해 신안보관,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내세우는 시진핑이 오히려 진중한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발언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의 출현은 미국 체제의 건강함보다는 국격과 영향력의 하락을 의미한다. 하늘 위에 있을 것 같은 초강대국이 땅 아래로 내려왔다. 트럼프가 말했듯 미국은 20년, 40년 전의 미국이 아니다. 자기 발등의 불을 끄기에 바쁘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고립주의가 아니라면 적어도 고약한 냄새가 풀풀 풍길 것이다. 클린턴이 되어도 트럼프 현상을 외교에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에게 열광했던 표심을 의식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에 일본 같은 일급(一級) 동맹이 아니다. 한국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적극적으로 보조를 맞추지 않았고, 남중국해 문제의 입장 표명에도 주저하였다. 트럼프는 한국이 안보에 유임승차하고 경제적 성의를 보인다면 동맹관계를 흔드는 기행을 일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안미경중(安美經中)에서 그래도 안보는 미국이라는 논리가 점차 힘을 잃을 것이다. 미국은 대한(對韓) 동맹공약을 얼마나 중시하며 이행 의지는 얼마나 확실한가? ‘물질 우선주의’란 이질적 요소가 유입되면서 한·미 동맹의 가치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미국이 미국 같지 않게 되면 관성으로 인해 한·미 동맹은 여전히 단단한 것처럼 보여도 서서히 이완될 것이다.

한·중 양국은 작년까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지만 올해 초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북제재 이견으로 다소 어색해졌다. 사드 배치 문제를 둘러싸고 다시 양국 간에 긴장감이 조성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베이징 전승절 기념식 참석은 양국관계의 발전 방향을 분명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미국 내부의 변화와 미·중 관계의 재정립으로 인한 한국의 안보환경이 변하고 있다. 올해 말 미국 대선 결과는 한·중 관계의 발전에 가속 페달을 밟을지, 브레이크를 걸지, 혹 공회전할지 어떤 형식으로 든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의 대외, 대북, 통일정책도 이러한 큰 그림과 추세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황재호 한국외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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