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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일베. 페이스북 코리아의 다른 이름이다. ‘김치녀’ 페이지처럼 여성혐오 게시물이 올라오는 페이지는 신고가 들어가도 별다른 규제가 없었던 반면, ‘메갈리아’ 페이지는 계속해서 폐쇄하는 등 차별적인 운영을 해왔기 때문에 얻은 별명이다. 계속된 항의에도 시정되지 않자, 메갈리아는 페이스북 코리아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법률 지원금을 모금했다. 여기에 4103명이 참여해 1억3400만원을 내놓았다. 목표액을 1448% 초과달성한 금액이었다.

그러면서 한동안 온라인을 떠돌았던 하나의 문장이 매우 호소력 있는 구호로 떠올랐다.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가 그것이다. 이와 함께 페미니즘이 자본주의에 영합한다는 염려와 비판의 목소리 역시 함께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구호는 자본주의적 시장논리로부터 시작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게 단순하게 이해될 수 없다.

‘돈이 되는 페미니즘’이라는 감각이 본격적으로 여성 대중 속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초반, 트위터를 중심으로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운동이 촉발되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시태그 운동은 온라인에서의 선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의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졌다. 이와 함께 민우회나 성폭력상담소 등 신뢰할 만한 페미니스트 단체에 대한 후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돈이 되는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서로의 활동을 응원하고 서로에게 힘을 부여하는 하나의 실천이었던 셈이다.

이어서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경찰청장에게 ‘소라넷 폐쇄’를 강력하게 요구하자, 이를 지지한 여성들이 진 의원실에 후원금을 보내는 일이 일어났다. 시민-제도정치-정책의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이다.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표현이 여성 대중 사이에서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시점이었다. 이때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페미니즘은 표가 된다”의 다른 표현이었으며, 이는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여성이 취할 수 있는 하나의 정치적 의사전달 방식이기도 했다. 20대 총선에서 ‘아재정치 아웃’과 같은 구호가 등장하고, 수도권 지역 청년 여성의 투표가 여소야대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등의 변화가 생긴 것은 이런 정치적 각성과 함께한다.

이 구호는 물론 적극적인 소비자 운동과도 만났다. 최근 영국 여성참정권 운동을 다룬 영화 <서프러제트>의 단체관람이 연이어 조직되고 있는 것은 그 대표적 예다.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의 역사를 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여성의 이야기가 ‘팔렸’으면 하는 바람 역시 녹아있다. 이 움직임은 남성중심적인 재현의 장을 재편해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2010년대 대한민국을 사로잡고 있는 여성혐오적인 정서와 문화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정치·경제적 위기를 남성 개인의 것으로 전치한 뒤, 그를 문화적으로 위로함으로써 타계하려 했던 지난 10여년간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대중문화의 여성혐오는 여성에 대한 물리적 폭력을 조장하고 제도적 차별을 정당화해왔다. 그리고 이제까지 여성 소비자들은 이런 여혐 텍스트에도 기꺼이 지갑을 열어왔던 것이다. “페미니즘이 돈이 된다”는 더 이상 가부장제적 자본주의의 공모자가 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호에서 ‘돈=자본’이 아니라는 것, 가부장제적 자본주의하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는 사실을 봐야 한다. 자본은 끝을 모르는 자기 축적을 목표로 하지만 지금 이 운동에서의  ‘돈’은 축적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타자화를 근간으로 하는 가부장제적 자본주의의 견고한 회로를 내파하는 균열이 되려는 것이다. 남성의 돈은 ‘연대’로 이해되고 여성의 돈은 ‘소비’로 환원되는 공식으로는 이 구호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 구호를 사용하는 페미니스트들 역시 이를 인식해야 한다.

한편으로 ‘돈’이란 대중이 조직되는 매개이며, ‘팔린다’라는 수사는 그 대중의 세계관과 욕망에 관계한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욕망할 만한 것이 상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이 사회에서 대체 어떤 가치가 교환될 수 있으며 소통될 수 있느냐에 대해 묻는 급진적인 질문이 된다. 그래서 ‘페미니즘이 팔린다’는 것은 페미니즘이 세계에 개입하는 영향력(power)이자 그 세계를 바꾸는 힘(power)이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 여기에서 페미니즘은 양적으로 더욱 성장하고 질적으로 더욱 풍부해져야 한다. 페미니즘이란 한 시대의 한계를 껴안아 터트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돈’이라는 수사 앞에 주춤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한계를 예민하게 인식하면서 ‘돈’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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