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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아깝다’는 댓글을 보고 기사를 자세히 읽게 됐다. 박종철 예천군 의원의 사건을 다룬 기사를. 해외 연수를 가서 가이드를 폭행했다고 한다. 하필이면 독재정권의 폭력에 희생된 열사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그 이름이 아니었다면, 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지방의원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을지 모른다.

전직 지방의원에게 어떤 자리인지를 물어봤다. “일반인들에게는 국회의원보다 중요할 수도 있는 자리”라고 했다. 

지방의회의 권한은 크게 3가지다. 조례를 만들 수 있는 조례 제정의 권한, 예산을 심의하고 확정하는 재정에 관한 권한, 지방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이다. 

경북 예천군의회 박종철 의원이 11일 오후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예천경찰서로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 의원은 외국 연수 도중 가이드를 폭행해 고발당했다. 연합뉴스

전직 지방의원은 말했다. “국회에서 심의하는 국가 예산은 액수가 수백조원에 달하지만 지방에 내려줄 예산, 공무원들의 월급 등 미리 쓸 곳이 정해진 것이 대부분이다. 국회가 직접 쓸 곳을 결정하는 것은 많지 않다. 반면에 지방의회가 심의하는 예산은 액수는 작을지 몰라도 주민들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쓰이는 것들”이라고 했다. 예컨대 동네에 놀이터를 만들지 말지는 국회가 아니라 지방의회가 최종 결정하는 것이니 일반인들에게는 국회보다 지방의회가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얘기였다.

이렇게 중요한 지방의회를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끌고 나가고 있는지에 대해 그동안 너무나 무심했다. 그 틈을 타고 지방의원들은 필요 없는 해외연수를 다니며 추태를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는 뒤늦게 지방의원 여행규칙을 개정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선다고 한다. 그 정도로 문제가 해결될까.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방의원들의 자질은 왜 주민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지 물어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고 했다. 정당 공천과 소선거구제가 첫손에 꼽혔다.

지방의원 공천권은 보통 그 지역 국회의원들이 행사하는데, 뽑는 사람의 유형은 뻔하다고 했다. 우선 자기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그래야 부려먹기 편하니까. 자기보다 똑똑해서는 안된다. 똑똑하면 나중에 자기 자리를 위협할 수 있으니까. 그저, 현재의 위치에 만족하면서 적당히 잇속을 챙기는 사람들이 지방의원 공천을 받기 쉽다는 얘기였다.

여기에 더해 선거구당 2~3명만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 야합을 낳기 쉽게 만든다고 한다. 그때그때 ‘바람’을 타고 한 거대 정당에서 단체장과 지방의회를 싹쓸이하는 일이 많아 지방의회가 단체장을 견제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지방자체제도가 부활한 지 벌써 28년이 됐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소선거구제를 주장하는 측의 논리는 중대선거구제는 지역이 넓어 선거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한 선거운동이 대세다.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더라도 비용이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다양한 출신의 지방의원들을 뽑아야 서로 감시와 견제를 하면서 발전해나갈 것이다.

정당 공천을 유지하려면 공천권을 행사한 사람에게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권한에는 당연히 책임이 따라야 하므로. 박종철 예천군 의원을 공천한 국회의원을 다음 총선에 나가지 못하게 한다면 모든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다음부터 공천할 지방의원을 매우 신중하게 뽑을 것이다. 아니면 공천권을 포기하든가.

지방자치에 관심이 많은 한 지인은 이런 아이디어도 내놨다. ‘지방의원 휴직제’를 도입하면 어떻겠느냐고. 과거에는 정치권이나 행정부에 인재가 많았지만, 지금은 기업에도 좋은 인재가 많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기업에서 재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지방의회에 들어오면 지방정부의 회계를 감시하는 수준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육아휴직제도처럼 지방의원에 당선된 사람들은 휴직을 법으로 보장해주는 ‘지방의원 휴직제’를 만들면 지금보다 지방의원들의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악용을 막을 장치도 마련해야겠지만.

우리는 최근까지 큰일을 많이 겪었다. 촛불시위와 대통령 탄핵도 불과 2년 전 일이다. 그 사이 가까운 곳은 오히려 챙기지 못했던 것 같다. 어쩌면 이번 ‘예천군의회 사태’는 우리에게 가까운 곳도 돌아보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지방의회를 개혁할 최상의 방법은 아직 모른다. 앞으로 찾아가야 할 숙제다. 하지만 이 숙제를 시작할 때가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제2의 박종철 의원’은 없어야 한다.

<김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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