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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사람들은 꿈을 꾼다. 대학 졸업하면 좋은 직장 잡고 싶다고, 장사나 좀 잘됐으면 좋겠다고, 전셋집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해마다 세상 좀 변했으면 좋겠다고 꿈을 꾼다. 올해, 당신의 꿈은 이뤄질 것 같은가.

사회학자 김홍중은 꿈을 크게 3가지로 나누었다. 개인의 꿈인 사몽(私夢), 국가가 심어주는 꿈인 공몽(公夢), 다양한 조직체가 생산하고 구성원에게 분배하는 공몽(共夢)이다. 꿈은 개인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적은 사회에서는 꿈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아버지가 의사거나 변호사인 집안에서 자녀들은 아버지를 롤 모델로 삼을 수 있다. 한데 아버지가 중소기업의 비정규직 육체노동자라면? 꿈도 부모로부터 상속받는다. 부르디외는 부유층의 문화적 취향이나 에티켓을 문화자본이라고 했는데, 김홍중은 꿈 역시 자본이라고 했다.

국가의 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선진국 진입,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 같은 것들이다. 이 꿈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도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약소국이지만 부강해질 수 있다는 열망에 많은 사람들이 힘을 보탰고, 몸을 던졌다. 그래서 쇠공처럼 단단한 꿈이다. 국가의 꿈은 시대에 따라 변형되고 재생산됐으며, 강요돼왔다. 박정희 정권 때는 국민교육헌장을 통해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고 했고, 요즘에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 자학사관을 가르쳐서는 안된다’고 한다.

국가의 꿈을 꾸라고 학습·강요받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보다 국가의 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의 꿈은 좌절되더라도 국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비정규직이나 파견직 같은 제도 때문에 좋은 일자리 구하기가 별 따기처럼 어려워지고, 골목상권까지 진출한 대기업과의 경쟁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 격일지라도 그건 사회구조적 문제도 아니며, 더더욱 국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해경이 구조를 포기한 세월호 참사가 왜 국가의 잘못이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다. 모든 실패는 개인 탓으로 귀착된다.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은 노력이 부족해서이며, 시대를 잘못 만나서이고,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오히려 꿈을 접은 사람들이 열패감을 위로받기 위해 더욱 국가의 꿈에 매달린다. “가난하고 힘들지만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 이런 나라를 우리가 만들었거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그들의 어깨 위에 달린 계급장이고, 가슴에 붙이는 훈장이다. 그러나 현실은?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은 멕시코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자살률은 2003년 이후 부동의 1위, 세계경제포럼 발표 성평등 기준은 세계 116위…. 많은 통계가 가리키듯이 사실은 참담하지만 국가의 꿈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그래도 “대한민국 만세!”다.

경제 규모로만 보면 국가의 꿈은 얼추 성취됐다. 하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 1만5000달러일 때보다 2만달러일 때 당신의 살림살이는 더 좋아졌는가? 실은 많은 이들은 지금은 GDP가 얼마인지도 모른다. 국가의 꿈은 이뤄져도 개인의 삶과는 무관하다. GDP가 높아도, 선진국에 진입해도, 설사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팀이 우승을 한다 해도 수많은 청년들과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이 나라는 헬조선일 수 있다.

이제 국가의 꿈이 아니라 다른 꿈을 꿔야 한다. 이 꿈을 시민의 꿈이라고 하자. 시민의 꿈은 공동체가 함께 추구해야 할 목표이며 희망이다. 사회가 공정해야 개인의 꿈도 이뤄지기 쉽다. 그렇다고 국가적인 목표를 무조건 거부하고 외면하자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꿈은 지금까지 시민의 희생을 요구해왔지만, 시민의 꿈은 반대로 국가의 의무를 요구한다. 이것은 꿈이라고 할 것도 없다. 이미 이뤄졌어야 할 국가운영의 원칙이다. 헌법 제10조에 이미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나와있다.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와 이웃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꿈도 마찬가지다. 혼자 꾸는 꿈은 흩어지기 쉽지만 함께 꿀 때 꿈은 더 단단해지며 현실화된다. 꿈은 땅에 뿌리를 묻고 있어야 한다. 땅과 떨어져 있는 꿈은 공상에 가깝다. 열매를 맺으려면 물과 거름을 줘야 하듯이 꿈도 현실공간과 맞닿아 있고 키워야 한다. 꿈나무란 실재적인 표현이다. 새해에는 알바에 치여 공부할 시간도 없는 청년, 임차료에 쩔쩔매는 치킨집 사장, 아이를 갖고 싶어도 보육과 교육, 경력단절 때문에 마음을 접는 여성들과 함께 꿈을 꾸자. 함께 꾸면 이루어진다.

최병준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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