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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대선 국면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는 정치 민주화를 이뤄낸 87년 체제가 성립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이제는 경제 및 사회 민주화를 이룩할 또 다른 체제, 소위 17년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선은 향후 30년을 설계하는 대선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시간이 부족하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는 순간 “준비~, 땅”하고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고, 승자는 선거 다음날부터 대통령직을 수행해야 한다. 인수위를 꾸릴 시간도 없다.

분명 대선 캠프는 이길 것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향후 30년을 바라보는 시대적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필자는 주제넘게도 그런 역할을 자임한다. 그래서 어떤 대선 캠프에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필자가 생각하는 “시대적 개혁 과제”를 언론에 올리려고 한다. 제1탄은 지난 12월 15일자 [경제와 세상]‘내가 보고 싶은 대선 공약’을 통해 올라갔다. 부동산세 도입이 그것이다. 다행히 경향신문에서 정기 칼럼 외에 3번의 지면을 추가로 허락해 주었다. 언론사의 용단에 감사드리며, 이제부터 그 기회를 활용해서 후속탄을 시작한다. <필자의 주>

새로운 2017년 체제의 출범을 위하여

제2탄의 주제는 “경제 성장”이다. 진보건 보수건 이념의 경계를 넘어 우리 경제 최대의 화두는 성장이다. 사람들이 독재와 고문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그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정치적 자유를 누리는 요즘을 ‘헬조선’이라고 느끼는 근본적인 이유는 성장 때문이다. 87년 체제가 출범할 때 ‘가난’이라는 단어는 사실상 사라져가고 있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가난이라는 단어를 다시 꺼내어 먼지를 떨고 있다. 그래서 성장이 중요하다.

문제는 ‘어떤 성장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의 정치권은 여기에 답을 하지 못한다. 손에 쥐고 있는 이론은 ‘투자촉진과 규제완화’뿐이다. 사용하는 정책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뿐이다. 그러나 투자촉진과 규제완화는 돌지 않는 물레방아고,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은 경기 조절 정책이지 경제성장 정책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 경제는 저성장·노령화의 추세를 반전시키지 못한 채 침몰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점을 뼈아프게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또 다시 헬조선과 노령연금을 대선에 이용해서 집권한 후 경제 성장을 하겠다면서 재벌들을 찾아다닐 것이다. 또 다시 과감한 투자 촉진, 몇십조원의 재정보강, 부동산 경기 부양, 암덩이같은 규제 뿌리뽑기, 기업하기 좋은 나라 등등을 외칠 것이다. 여기에는 진보와 보수의 구별이 없다. 야당 대표가 경제성장 얘기하고 싶을 때 하는 제스처가 무엇인가? 전경련 방문하는 것이다. 그리고 투자를 구걸한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되는가? 전혀 아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참여정부 때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나 헬조선 극복에 실패한 것이다.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지난해 7월4일 열린 양대노총,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 기자회견에서 양대노총 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2017년 적용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요구하고 경영계의 동결안 제출에 대해 규탄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그럼 어떤 성장정책이어야 하는가? 이에 대답하기 위해서 도대체 경제 성장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그 기본 구조를 다시 돌아봐야 한다. 경제 성장을 소박하게 ‘(일인당) 생산물의 지속적인 증가’라고 정의한다면 결국 생산을 지속적으로 많이 해야 한다. 생산을 이뤄내는 요체는 생산요소의 양과 이를 버무리는 기술수준이니, 생산량을 늘리려면 생산요소를 늘리거나 기술발전을 장려해야 한다. 이를 하나씩 살펴보자.

생산요소의 양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상대적으로 희소한 생산요소’가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것을 늘려야 한다. 넘쳐나는 생산요소를 늘려 봐야 소용이 없다. 지금 우리 경제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생산요소는 노동이다. 자본은 넘쳐 나는데 노동이 부족한 것이다. 따라서 성장 정책의 첫 번째 명제는 노동량의 제고다.

다음 명제다. 단순한 의미에서 노동량은 노동자의 숫자와 평균 근로시간의 곱이다. 그런데 이것을 늘리는 것이 어렵다. 노령화에 의해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평균 근로시간도 늘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민 자유화를 주장하지만 이것은 총 생산량은 늘리지만 일인당 생활수준의 증가를 가져온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일단 배제한다.) 이것이 우리 경제가 현재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핵심 이유다.

세 번째 명제다. 그럼 이 추세를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노동의 질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마지막 남은 성장의 열쇠인 ‘노동에 녹아들어간 기술수준’ 즉 ‘인적 자본의 보존과 축적’을 장려해야 한다. 노동의 질을 반영한 ‘효율적 노동 투입량’을 늘려야 지속적으로 성장도 되고, 거꾸로 물질적 투자의 유인도 되살아 날 수 있다. 즉, 성장 엔진이 다시 점화될 수 있는 것이다.

결론이다. 남은 문제는 인적 자본의 보존과 축적을 장려하는 것을 어떻게 정책적으로 구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필자는 그것을 ‘경제 및 사회 민주화’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지난 4년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내걸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언제나 성장의 대척점에 있었다. 그래서 실패했다. ‘다같이 가난하게 살자는 것이냐?’라는 반론 앞에 맥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경제 및 사회 민주화가 곧 성장 정책’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향후 30년을 바라보는 17년 체제가 추구해야 할 핵심적인 경제·사회 정책의 목표다. 그 구체적 내용은 다음 지면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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