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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사진을 보면 심심찮게 태극기를 발견한다.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옆 상무대에 모셔 놓은 희생자의 관 위에 태극기가 덮여 있는 사진은 충격적이다. 광주시민은 왜 태극기를 들었을까. 먼저 동료 시민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항쟁이었다. 또 걸핏하면 정적과 시민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였던 군사정권에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시민들의 예상대로 신군부는 고정간첩이 선동하고, 불순분자들이 일으킨 폭동이라고 했다. 하지만 북한의 개입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태극기는 광주시민들이 정체성, 순수성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이자 상징이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 인상 깊은 사진도 있다. 대형 태극기를 뒤로 하고 한 사내가 웃통을 벗은 채 양손을 들고 다탄두 최루탄이 쏟아지는 도로를 뛰는 사진이다. 독재에 대항해 태극기를 든다는 것은 직접 민주주의로의 변화, 국가 정체성의 변화 요구였다.

민주화 이후 시위 현장에서 태극기는 사라졌다. 왜? 국가주의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엄하며, 전체를 위한 부속품이 아니라는 거였다. 국기가 개인의 정체성을 대표할 필요도 없었다. 하여 3·1절, 광복절 같은 국경일, 국제적 스포츠 경기가 아니면 태극기를 들 일이 별로 없었다.

보수단체인 태극기행동본부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개최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 서울광장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주장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든 시위대가 몰려들고 있다. 시위대에는 노인이 많다. 이들에게도 태극기는 역시 자신이 살아온 역사를 내보이는 존재 증명일 것이다. 산업현장에서 뼈 빠지게 일했고, 어떤 이들은 사우디 같은 건설현장에도 다녀왔다. 심지어 ‘미국의 전쟁’이었던 베트남에 파병됐다. 국가의 명령에 따라 타국에서 총과 삽까지 들었다고 자부하던 이들을 자극한 것은 대통령 탄핵으로 자신들이 세운 대한민국이 흔들릴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다.

성조기를 들고나온 이유는? 한국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는 반공과 친미로 다져왔기 때문이다. 브루스 커밍스가 1947년  미 군정 고위 한국인 관료 115명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1명만이 항일 운동과 관련 있고 나머지는 일본 강점기 때 관료, 군인 등이었다. 정통성이 취약한 친일파들은 반공주의와 친미주의를 내면화했다. 군사정권은 인권을 유린했고, 반대자들을 탄압했지만 세습 왕조국가나 다름없는 북한보다는 낫다는 상대적 우월감을 강화하면서 반공과 친미는 보수의 종교가 됐다. 세월호 참사 때와 달리 박 대통령이 2015년 3월 중동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 공항에서 병원으로 곧바로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찾아 병문안했던 것은 종교에 가까운 신념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렵다. 

근대화는 국가주의에서 민주주의적 개인화로의 이행을 뜻한다. 근대화는 정치·사회·경제·문화적인 변화를 포함한다. 다원적이다. 한데 한국의 근대화는 오로지 산업화만을 중시해왔다. ‘조국 근대화’를 내건 박정희는 영구집권을 꾀했고, 반근대적이었지만 보수에게는 ‘근대화의 상징’이다. 이들은 오로지 성장만이 중요하고, 재벌이 곧 경제이며, 경제만 좋다면 다른 것들은 문제가 있어도 괜찮다는 확신 속에 살아왔다. 탄핵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이런 사고에서 나온다. 이런 한국의 근대화를 김덕영은 ‘환원근대’라고 했다.  또 극단적인 친미주의를 추구하며 미국과의 강박적인 분리불안을 나타내는 한국을 ‘콤플렉스 국가’라고 비판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부부싸움을 하다가 애국가를 듣고 국기에 배례하는 모습을 보고 나라사랑이라고 치켜세운 박 대통령은 국가주의즉, 전근대의 상징이다. 박 대통령이 내세우는 것은 인권·세계평화·민주주의 등에 대한 철학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는 호소이다. 태극기·성조기 시위대의 눈에는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인(私人)에게 넘기고, 재벌을 압박해 출연금을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 대통령의 행동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반헌법적 행위가 아니라 사소한 실수에 불과하다. 탄핵은 대통령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흔드는 문제일 수 있다. 이번 탄핵은 개인의 고난사를 넘어 그동안 사회적 나침반을 제대로 설정하며 살아왔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국가와 동맹을 맺었던 재벌은 특혜를 받아왔다. 안타깝게도 국가는 산업역군이라 자부하는 노인들에게 걸맞은 대우를 해주지 않았다. 노인빈곤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이들은 산업화의 짙은 그늘에 놓였지만 집단을 위한 희생을 애국으로 각인해왔다. 국가주의 신화 속에서 ‘조국을 위해 일했다’는 신념을 재확인하고,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기에 태극기를 움켜쥔다.

최병준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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