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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어머니 마음’)
경향신문은 신년기획으로 ‘맘고리즘을 넘어서’를 연재했다. 맘고리즘이란 취재팀이 만든 말이다. 엄마(Mom)와 알고리즘(Algorithm·문제 해결을 위한 절차나 규칙)의 합성어로 임신→육아→직장→부모에게 돌봄 위탁→퇴사→경력단절→자녀 결혼→손자 출산→황혼 육아로 이어지는 돌봄노동의 고리를 의미한다. 취재팀이 만난 엄마들은 절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이야 엄마의 기쁨이지만 돌봄노동은 오롯이 엄마만의 짐이라고. 엄마의 어깨에는 인생의 황혼녘까지도 육아, 교육, 돌봄이란 짐이 얹혀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노래 ‘어머니 마음’이 뜬금없는 찬사만은 아니다. 손발이 다 닳을 만큼 고생한다는 것은 사실에 가깝다. 하기야 엄마에게 흔히 ‘위대한’이란 수식어를 붙이지만 하나도 거창하거나 어색하지 않은 것도 이런 까닭일 것이다. 엄마는 희생과 헌신 그 자체니까.
하지만 이 노래를 뒤집어보면 엄마는 자신을 희생하는 게 당연하고, 아들딸 뒷바라지에 온몸을 바쳐야 하는 존재란 함의도 있다. 김보성은 <엄마의 탄생>에서 이 노래가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어머니의 이상을 설정하고, 그러한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을 찬양하며, 그 책임을 홀로 감당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표하며 짐을 나누어 드리는 대신 오히려 어머니 비난을 통해 죄책감을 부여”한다고 썼다.
‘어머니 마음’은 1930년대 만들어져 보급됐다고 한다. 80여년이 지났지만 희생적인 어머니상은 변하지 않았다. 1930년대의 어머니상은 2010년대엔 슈퍼맘으로 진화했다. 당시 어머니들은 집안에서 자식 뒷바라지만 하면 됐으나 요즘 엄마는 가정경제도 이끌어야 한다. 알다시피 슈퍼맨은 현실에는 없는, 만화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가상의 영웅이다. 직장과 가정에서 모두 성공적인 여성을 뜻하는 슈퍼맘은 우리 주변에 실재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척척 해내면서! 물론 슈퍼대디란 말은 없다. 슈퍼맘은 엄마가 이중의 희생을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사실 슈퍼맘도 들춰보면 허구다. 친정이나 시댁에 돌봄을 위탁하거나 많은 돈을 들여 돌보미를 고용하지 않으면 결코 슈퍼맘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슈퍼맘도 하루아침에 경력단절여성으로 추락할 수 있다.
역설적인 사실이 더 있다. 엄마가 위대하고 숭고한 존재라면 엄마든, 예비엄마든 여성은 그만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여성에 대한 대우는 오히려 차별적이다.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0% 수준에 불과하며 각종 성평등 지수는 OECD 국가 중 가장 나쁜 편이다. 게다가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울기라도 하면 맘충이란 비아냥까지 듣는다. 희생과 헌신이 아니면 눈총을 받는 사회에서는 엄마가 되고 싶은 여성마저 주춤거릴 수밖에 없다.
“출산과 돌봄이 모성본능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모든 동물들은 자신들의 DNA를 물려준 2세를 퍼뜨리고 돌보는 강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생태계에서 많은 동물은 양육이 여의치 않을 때는 출산을 연기하거나, 자신의 새끼를 죽이기도 한다. 고대와 중세에는 유아 살해와 어린이 유기도 흔했다.
정부는 출산·돌봄 문제를 인구절벽과 연결시키고 그에 따른 생산력·소비 감소를 걱정한다. 하지만 여성을 ‘아이 낳는 자원’으로 보는 이 같은 생각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여성(엄마)의 지위와 역할은 정치·경제·사회적 조건과 인식에 의해 틀지워진다. 남성사회와 여성사회가 따로 없듯이 남녀의 역할 구조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수렵채집사회에서는 남성이 매일 사냥을 통해 동물을 잡아올 수 없었기 때문에 여성의 채집활동이 생존에 중요했다. 육아는 공동체가 담당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난 뒤에는 남성이 직장과 공장으로 호출당하자, 여성은 집안에서 아이를 돌본다는 남녀의 구분된 역할상이 생겨났다. 교육격차가 줄어들고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여성들은 다시 일터로 불려나와 국가경제, 가정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돌봄의 짐은 분배되었는가? 한국 사회는 개인과 그의 가족에만 돌봄의 짐을 떠넘겨왔다.
맘고리즘은 성평등의 저울 위에서 풀어야 할 문제다.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인식의 변화를 요구하는 문화의 문제이다. 여성의 저울추만 움직여서 될 게 아니라 남성의 저울추를 어디에 놓을지도 중요하다. 내 문제이며, 내 아들의 문제다.
최병준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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