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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어린 우리들을 한 달에 한 번 괴롭히는 일이 있었으니 학교에서 폐품 모으는 날이었다. 바닥에 바짝 붙어 먼지를 마시며 밥을 버는 부모님은 신문을 보시지 않았다. 게다가 학교에 폐품을 갖다 내야 할 형제가 많으니 어쩔 수 없이 엄마가 큰맘 먹고 청량음료 한 병씩 사주고 그 빈 병이라도 갖다 내라셨다.

공중전화기 부스에서 전화번호부 뜯어오지 말라는 학교 가정통신문도 기억난다. ‘88 꿈나무’인 우리더러 21세기를 책임지라더니 그 꿈나무들을 넝마주이로 내몰던 시절이었다.

이제 그 꿈나무들은 출근길에 아파트 재활용 코너에 간단하게 폐품을 던진다. 이제 넝마주이가 사라졌는가. 그것도 아니다. 폐지를 주워 한 끼를 버느라 노구를 움직이며 새벽부터 길거리를 헤매는 노인들이 2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폐지 가격 중에서 가장 높게 쳐주는 것은 신문지이고 그다음엔 골판지다. 1㎏당 각각 100원, 80원가량. 노인 한 명이 거머쥘 수 있는 폐품의 양이 적어 하루 5000원의 소득을 올리는 일도 쉽지 않다. 우리 동네 한 식당은 폐지를 일부러 내놓는데, 폐지를 걷으러 온 할머니께 믹스커피 한 잔도 꼭 드린다. 그 믹스커피 한 잔은 기호식품이 아니라 할머니의 점심 한 끼다. 식당에서 밥을 한 끼 그냥 드리려 하지만 끝내 거절하신다. 믹스커피 딱 한잔은 할머니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서울 모처의 경로당 내에서 이루어지는 식사를 관찰하고 기록한 소준철·이민재의 ‘빈곤한 도시노인과 지역 내 자원의 흐름’이란 연구 발표를 들었다. 연구자들이 찍어온 경로당 밥상 사진은 스산하기 이를 데 없다. 밥과 김치, 계란찜(이제 계란 값도 올랐는데), 동태찌개가 차려진 날이다. 그날은 동태 중간 토막을 차지하는 것 때문에 할머니들 마음이 서로 상한 날이기도 했다. 반찬이 부족하니 밥양은 성인 남성들이 먹는 양을 웃돈다. 사과 한 개도 정확히 등분한다. 갈등의 요인이 되곤 해서다. 지자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경로당에 지원하는 쌀은 읍·면·동의 경우 1년에 120㎏에서 140㎏ 정도. 연구자들이 관찰한 경로당엔 평균 30명의 노인들이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필자의 아버지가 다니는 인천의 한 경로당에서도 30명 정도의 노인들이 점심을 드신다. 30명 기준으로 하루에 소비되는 쌀이 1.6㎏ 정도. 그러니 저 정도 지원받는 쌀로는 100끼니 정도를 겨우 채운다. 나머지 부족분은 각자 노력으로 메워야 한다. 종교시설에 가서 한 끼를 때우기도 하고 경로당 임원들이 주민센터에 쌀과 김치 지원을 요청하기도 하면서 가급적 모든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자신의 한 끼이자 공동의 식사를 해결하느라 분주하다.

한국에는 650만명의 노인들이 있다. 그중 절반 이상이 중위소득에 못 미치는 빈곤 상태다. 여성노인의 빈곤 비율은 더 높다. 그나마 경로당에 가서 스산한 밥상이라도 받을 수 있는 노인들은 사정이 낫다고 해야 할지. 한 달에 3000~5000원 하는 경로당 회비도 버거워 발길을 끊는 노인들도 많다. 당장 급한 것이 집세이니 오늘도 폐지를 그러모으며 믹스커피로 한 끼를 넘기는 노인(할머니일 확률이 더 높다)들이 곳곳에 넘쳐난다. 이 추운 겨울, 저 어르신들의 저녁 밥상에 동태 한 토막이라도 올라갔는지 안부를 묻기조차 면구스럽다. 왜 하필 경로당의 경은 ‘공경할 경(敬)’자인지. 이 겨울 온기 있는 밥상은 누가 받고 있는가. 소년과 청춘, 그리고 황혼의 밥상마저도 차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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