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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어디 그런가요. 전체 결과만 보면 민주당이 크게 이길지 모르지만, 하나하나 선거구별로 보면 결국 비슷하게 붙지 않을까 싶어요. 선거는 선거더라고요.”

6·13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종종 하게 되는 말이다. 여당의 일방적 게임 같은 선거 양상이 끝까지 이어질지 궁금해들 한다. 15년 동안 열번 선거를 치르며 한번도 똑 떨어지게 맞혀본 적 없는 ‘신기(神氣) 없는 점쟁이’(정치부 기자)에게 큰 기대 없이 묻는 것일 테지만, 역시 큰 자신 없이 대답하곤 한다.

몇번의 선거가 그랬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지금보다 더 일방적일 것 같던 총선 결과는 여당의 152석 턱걸이 과반이었다. 존망을 걱정하던 한나라당은 121석으로 ‘지고도 이긴 듯’했다. 2016년 20대 총선 때도 여론조사들은 내내 여당(새누리당)의 압승을 가리켰지만, 결과는 원내 1당조차 더불어민주당(123석)에 내주는 여당의 참패(122석)였다. 당시 수백~수천표차 초접전 지역구들이 널렸고, 그 대부분에서 야당이 승리한 결과였다. 2014년 6·4 지방선거는 세월호 참사 두 달 뒤였지만, 광역단체장 성적표는 여당인 새누리당(8석)과 새정치민주연합(9석)이 팽팽했다.

선거의 이 같은 기묘한 복원력은 어떤 정치세력도 선거 앞에서 좌절하고 비관하지 않도록 하는 동력일 게다. 국정농단의 직격탄을 맞은 자유한국당이 어떤 변신 몸부림도 없이 똑같이 낡은 선거를 되풀이하는 것도 이 관성에 대한 맹신 때문일 것이다.

“가짜 여론”(한국당 홍준표 대표) 주장처럼 여론조사가 틀린 것일까. 무응답 변수가 있지만, 사실 여론 지형 자체가 틀리거나, 갑자기 달라지는 일은 없다. 사람들 마음이란 게 그리 쉬 바뀌지 않는다. 특히 ‘정치적 기호(嗜好)’는 더 그렇다. 참 미스터리하지만 정치적 식견을 바꾸는 걸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거나, 때로는 변절처럼 여긴다.

다만 이 같은 완고한 정치적 기호가 표로 연결되지 않기도 한다. 특정 지지층이 방심에서든, 부끄러움에서든 투표장에 안 나가는 선택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정 심판’도 가능하다. 이런 탓에 선거는 전혀 다른 ‘로직’(논리구조)을 가진 생물처럼 간주되기도 한다. 선거를 예측한다는 건 이처럼 위험천만하다. ‘선거는 선거다’식 예측이 조금은 비겁해도 정치적으론 모범답안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 역시 그런 ‘생물 같은 선거’인가 하는 의문은 든다. 지금은 과거 데이터들이 모두 무용한 ‘혁명적 상황’이 아닐까.

지금까지 ‘선거적 복원력’을 가능케 했던 것은 모두 과거를 평가하는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정책선거나 미래 선택 등은 미사여구였을 뿐이다. 이런 구조 탓에 선거는 늘 진영 대결이고, 좌우, 보수·진보식 분석과 전망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드물게 ‘미래에 대한 고민’을 강요하는 선거일 수 있다. 선거 바깥에서 한반도 평화냐, 전쟁이냐는 미래를 결정하는 거대 드라마가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선택 결과물은 천지개벽 수준의 차이가 될 것이다. 한반도 미래가 타임머신을 타고 와 선거를 지켜보는 듯한 상상이 든다.

이처럼 지금은 선거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버린 정치·사회적 변혁의 상황이다. 과거 여야 틀이나 보수·진보와 다른 여론 층위들이 실제 감지되기도 한다. 정치적 기호가 아닌 민심 성향 자체가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다. 혁명적 상황이라면 정치의 태도는 전혀 달라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선거적 복원력’에 기대고 있다간 큰 낭패를 당하기 쉽다. 한반도 미래가 타임머신을 타고 온 이번 선거를 여전히 ‘냉전의 놀이터’로 만들고 있는 한국당이 실패한다면 이 때문일 것이다.

영국 보수당 윈스턴 처칠(총리)과 노동당 클레멘트 애틀리(부총리)가 전쟁 앞에서 망설임 없이 거국내각을 구성했듯 한반도 미래 앞에서 민주당과 한국당이, 보수·진보가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 그게 그 미래를 불변의 현실로 붙잡는 길이 될 것이다. 전쟁보다 평화 앞에서 하나가 되는 게 몇십배 빛난다.

하지만 지금 한국당엔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으니 이번 선거는 ‘선거적 복원’ 없이 일방적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한국당과 수구보수들은 북·미 정상회담 전후로 줄곧 ‘볼턴교도’(강경파 존 볼턴 추종자)가 되어 ‘어설픈 타협’론으로 정상회담 결과와 한반도 미래를 평가절하하는 데 골몰할 것이다.

그 결과는 선거 한번의 패배가 아니다. 정치세력으로서 그들의 정치적 기억과 미래가 모두 ‘딜리트’(삭제)되는 궤멸 상황이 될 것이다. 답은 너무 간명하지 않은가. 지금 한국당의 일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 “5G 시대에 ‘재난문자 수신’도 안되는 2G폰 들고 선거하는 딱 그 지경”만은 면해야 한다.

<김광호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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