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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편집국에서]편향된 인간

opinionX 2019. 12. 6. 11:28

퇴근길 지하철 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들면 좋겠지만 요즘은 자꾸 휴대폰으로 유튜브 채널을 보게 된다. 잠깐 본다는 것이 30~40분은 정말 후딱 간다. 그런데 옆사람이 보면 어쩌나 가끔 민망해질 때가 있다. 

첫 화면에서부터 ‘저탄고지의 진실’ ‘중년 뱃살’ ‘엽떡 매운맛 먹방’ ‘심쿵주의 아기시바견’ 등이 줄줄이 추천돼 뜨기 때문이다. ‘친절한 알고리즘씨’가 내가 지난 시간 즐겨 봤던 것을 근거로 비슷한 내용의 콘텐츠만을 골라 보여주는 것이다.

유튜브 채널뿐 아니다. 넷플릭스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는 “소비자가 10대 소녀이든, 70대 할머니이든 상관없이 그들의 취향을 타기팅해 맞춤형 콘텐츠를 완벽하게 추천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한다. 나의 취향에서 벗어나 색다른 콘텐츠를 보려면 그만큼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콘텐츠는 갈수록 다양해지는데 막상 한 가지(성향)에만 노출되니 아이러니다.

콘텐츠가 취향에 머물지 않고 정파성을 띠는 경우라면 어떨까. 보수 성향의 소비자는 더욱 보수 성향의 콘텐츠에, 진보 성향의 소비자는 더욱 진보 성향의 콘텐츠에 노출되게 되며 그 편향성이 스스로 강화된다. ‘에코 체임버 효과’인 것이다. 반향실(에코 체임버)에서 하나의 소리가 울려 증폭되는 것처럼 정보와 신념이 한 가지로 증폭되거나 강화되는 것을 말한다.

뉴스 콘텐츠에서도 이런 현상은 진작부터 우려돼 왔다. 몇 년 전 포털뉴스의 편향성이 자주 도마에 올랐는데 2017년 발표된 논문 ‘인터넷 포털의 경쟁과 뉴스 콘텐츠의 선택’(최동욱 KDI연구위원)에서는 포털의 편향성을 측정한 내용이 있다. 그중 흥미로운 것은 ‘포털뉴스의 편향도와 사용자의 정치성향 간 차이가 클수록 클릭 수는 유의하게 감소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는 포털의 뉴스섹션에 게시된 뉴스들이 자신의 성향과 다를수록 해당 페이지에서 추가적으로 뉴스를 덜 선택한다’고 한다.

포털은 수익과 직결되는 클릭 수를 늘리기 위해 소비자 입맛에 맞는 편향된 뉴스를 더 노출시킨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뉴스의 다양성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최근 국내 대표적인 포털이 뉴스 편집 정책을 바꿔 뉴스를 공급하는 매체들에 더욱 편집권을 부여했다. 하지만 ‘클릭 수=수익’이라는 구조는 마찬가지여서 클릭 수를 늘리기 위한 포털뉴스의 편향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학자 필립 나폴리는 커뮤니케이션 정책수립의 목표로 ‘소스(Source), 프로그램(Program), 노출(Exposure)의 다양성 증가’를 말했다. 관련 정책을 수립하며 다양성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런 측면에서 최근 가장 문제되는 것은 노출의 다양성일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같은 생각의 페친들에게 둘러싸여 서로가 과신하는 팩트나 신념을 공고히 하는 것도 한 예다.

올해 들어 생경하지만 자주 쓰게 된 단어를 꼽으라면 ‘확증편향’이다. 선입관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수용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는 것을 말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다. 학술·시사용어로 어렵기만 한 단어였는데 일상어처럼 대화 중에도 불쑥불쑥 쓰게 된다. 정치이슈가 불거지면서 더욱 우리 일상에서 확증편향이 깊어진 탓이다.

편향성 문제는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뉴스 노출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스타트업까지 등장했다. 인터넷 사이트 노웨어(Knowhere)는 한 사안을 두고 보도된 수백가지의 뉴스를 취합해 세 가지 버전으로 뉴스를 서비스한다. 진보적 성향의 기사, 보수적 성향의 기사, 스트레이트 기사이다. 비정치적 기사에서는 스트레이트 기사, 긍정적 기사, 부정적 기사로 나눈다. 이 작업은 인공지능(AI)이 맡아 한다. 

노웨어의 공동설립자이자 편집장인 나다니엘 발링은 “우리는 정보 과부하 속에서 이를 극복하고 모든 기사에서 추출한 내용들을 조화시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포괄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언론으로 나아가기 위해 첫걸음을 내딛고 있다”고 말한다. 노웨어의 실험이 성공할지 아직은 미지수다.

정치적 견해든, 일상에서 벌어지는 의견 차이든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쉽지는 않다. 그동안 알아왔던 것을 믿고 판단하는 것이 더 빠르고 편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을 때도 편식이 편하다.

그러나 결과는 알다시피 편식은 건강한 나를 만들지 않는다. 일부러라도 듣기 싫은 얘기도 듣고,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보며 ‘편향된 인간’에서 벗어나자. 다양한 사회가 더 풍요롭고 자유로우니까.

<김희연 오피니언(소통)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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