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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블로그에서 1970년대 개롱리를 추억하는 글을 봤다. 개롱리는 지금의 서울 송파구 오금동과 거여동에 걸쳐 있던 마을이라는 것도 그 글을 보고 처음 알았다.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그의 글에는 지금으로선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운 송파구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었다. 여름이면 개울에 가서 물장구를 치고, 양버들 나무를 잘라 긴 칼을 만들어 놀고, 만화방에서 텔레비전 만화영화 <벰 베라 베로>를 보느라 어둑어둑한 저수지 둑길을 혼자 걸어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는 그의 기억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로 시작하는 옛이야기처럼 까마득했다.

그런데 10여년 전에도 서울 양재동 개울에서 놀았다는 한 아이의 기억은 놀라웠다. 예닐곱 살에 다세대주택이 빼곡한 양재동의 한 동네에서 살았다는 아이는 여름에 동네 친구들과 개울에서 온종일 놀았다는 얘기를 하면서 눈을 반짝였다. 아마도 공원을 가로지르는 개울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와 함께 유치원에 다니고, 해 질 때까지 꼭 붙어 다니던 친구들은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하나둘 떠났다고 했다. 그의 기억 속엔 동네 친구들이 떠나던 날들이 또렷이 남아있다. 그의 집도 그때 이삿짐을 꾸려야 했다. 반지하 집에 살았던 그는 서울 인근에선 집을 얻을 수 없는 가정 형편을 잘 알고 있었다.

“제가 떠나기 전날, 윗집에 살았던 친구가 선물을 줬어요.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들을 내놓고 하나 고르라고 했지요.”

그는 친구가 선뜻 내준 물건들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그중에서 가방에 거는 열쇠고리를 골랐다 했다.

“밍크털이 달린 열쇠고리였어요. 그건 사실 걔 할머니 거였어요. 내가 그걸 고르자 당황하더라고요.”

그는 아직도 친구가 준 선물을 간직하고 있다. 아마도 그가 살던 동네엔 다세대주택에 세 들어 살던 이들은 엄두도 못 낼 고층아파트가 들어섰을 것이다. 도시는 아이들의 따뜻한 추억을 짐작도 못할 테고,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던 이들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흔히 도시를 잿빛이라 하는 것은 여러 빛깔의 기억을 지운 탓이다. 그 도시는 여전히 누군가의 기억을 지워가며 덩치만 부풀리고 있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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