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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범 (대전대 교수.정치언론홍보학)
폭설이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예산안이 국회에서 야당과의 합의 없이 통과된 것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초대형 원자력발전소 건설 공사권을 따낸 것에 대한 작은 논란도.
충격적인 것은 후자, 즉 한국전력이 원전 계약을 따낸 사실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한국 주류 언론의 보도가 ‘용비어천가’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경험으로 한전에 결정적인 충고를 했을뿐더러 한국의 시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막후에서 집요한 설득작전을 폈다는 사실을 앞다퉈 보도했다.
이 대통령이 이러한 ‘기적’을 마무리하기 위해 UAE로 날아가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한국의 뉴스 방송시간에 맞추어 생방송 회견까지 한 행위는 이해할 수 있다.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쇼’를 탓할 생각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47조원’의 원전 수주를 아무런 비판과 냉정한 검토 없이 ‘우리의 승리’로 보도한 주류 언론의 태도는 여론몰이에 가까웠다. 극소수의 언론만 원자력발전소가 갖는 위험성, 반환경적 성격, 과장된 예상 이익에 대해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냈을 뿐이다.
(경향신문 DB | AP뉴스)
‘녹색성장’을 외쳐온 현 정부가 갑자기 원자력 예찬론으로 돌아선 것은 환경에 관한 진지한 고민이 거의 없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친원자력 발전론자들은 그것을 ‘청정에너지’라 부른다. 하지만 미국의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나 구 소련(현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전 폭발이 보여준 것은 지나간 과거의 한 장면에 불과할까?
만약 고리 원전에서 유사한 사고가 발생한다면 서울에서 26만명, 후쿠오카에서 32만명 정도가 방사능 때문만으로도 사망하게 된다는 가설이 있다.
한전이나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한국의 원자로는 전혀 다른 모델이고 비교적 안전하다고 치자. 원자력을 찬양하는 전문가들은 전기 생산에 드는 비용이 수력이나 화력에 비해 원자력이 훨씬 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계산법은, 수명이 30~50년인 원전의 해체 비용이나 주변 토양과 해안의 오염으로 인한 환경복구 비용은 전혀 포함하지 않은 엉성한 것이다. 그 비용이 ‘외부화’되어 있다. 중저준위 폐기물 저장 문제도 실상은 아주 난감한 문제 가운데 하나다. 일본의 시민과학자 다카기 진자부로의 말처럼 원자력은 “꺼지지 않는 불”이다.
또한 소수의 과학자 및 관료 엘리트에 의해 비밀스럽게 추진·유지되는 원자력발전소 문제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전형적인 ‘핵국가’가 갖는 속성을 띰으로써 민주주의를 위협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스웨덴 및 독일 같은 선진국이 원자력발전소 추가 건설을 중단하거나 점진적으로 폐기하기로 결정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세계 원자력 시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대신 풍력, 조력, 태양열, 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에 대한 국제적 투자는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원자력 ‘수출’을 ‘쾌거’나 ‘기적’이라고 선동하는 것은 수많은 노동자를 마비상태로 몰아간 원진레이온 공장을 중국으로 ‘수출’한 것을 국력 증대라고 강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근대적 개념인 ‘국운’까지 들먹이고, 게다가 그것이 ‘우리의 승리’라며 포장하는 한전, 주류언론, 청와대! 그 ‘우리’에서 적어도 나와 녹색시민들의 이름은 빼줬으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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