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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련 아주대 교수·에너지학 


최대 400억달러 규모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을 수주하고 세계 6번째 원전 수출국이 되었다는 소식에 우리는 어떤 소원도 들어준다는 ‘요정(genie·램프 속에 사는 정령)’을 만난 것 같이 행복하다.
더구나 1조달러 규모 시장이 열리는 원자력 중흥 시대에 즈음하여 터키·중국 등지로의 추가 수출도 가능할 것 같다. 글로벌 녹색경쟁 시대에 새로운 국부 원천을 개척한 셈이다.

하릴없이 에너지문제 학습에만 종사해온 필자는 원전 수출로 에너지부문이 국부(國富) 해외유출의 중죄인 신세를 면하는 ‘역 종속이론’을 국제학회에서 발표할 생각에 마냥 행복하다. 오랜만의 사회통합을 보는 것도 흐뭇하다.
그래서 흥겨운 노랫가락이 생각난다.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 봐”다. 이 노래 제목을 영어로 번역하면 “I am a genie for your wish”가 된다.

그러나 이 노래의 원전인 동화 내용에 의하면 요정을 램프에서 잘 꺼내줘야 소원을 들어준다. 그리고 너무 많은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 허망하게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원자력이라는 ‘요정’의 능력은 학계에서 충분히 검증되었다.
에너지는 태양에너지에 기반을 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 원자력은 유일한 후자이다. 따라서 석유, 석탄 등 ‘태양 근원’ 화석에너지의 고갈 위험이 커지고 신재생 실용화가 지연된다면 ‘지구계 자생’ 원자력의 역할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총 에너지 소비의 80%를 점하는 화석에너지의 완전 대체는 불가능해도 전력 생산의 80% 정도는 가능하다는 ‘원자력 요정’ 논리가 정립된다.

이러한 논리를 가장 먼저 수용한 국가가 우리와 UAE에서 경쟁한 프랑스였다.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은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 원자력 자립을 추진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대한민국의 영광”을 이룰 수 있을까? 안전성 미흡과 경제성 한계라는, ‘원자력 요정’을 가두는 램프를 잘 만지는 전략을 세우면 가능하다.
성급함과 오만함의 탈피가 이 전략의 핵심이다. 따지고 보면 안전성 논란은 핵폐기물 처리방안이 없는 핵잠수함 기술을 성급하게 민수용으로 전환한 데 기인한다. 요정이 잠에서 깨기 전에 램프를 만져버린 셈이다.

이 결과 ‘화장실 없는 호화주택’ 같은 원전 유지를 위해 ‘오만한’ 안전규제가 불가피했고, 결국 원전 경제성 저하로 귀결됐다. 많은 국가에서 원전 장기침체로 점진적 기술혁신 기회가 상실됐다. 우리나라의 원전 경제성과 안전성을 국제사회가 공인한 것은 꾸준한 운영경험 축적과 공정기술혁신 덕분이다.
그러나 안전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2050년 이후 핵융합로 상용화로만 가능하다. 따라서 추가 수출 확대를 위해서는 중간 대안인 제4세대 원전(APR+) 개발과 국가총체적 원자력 혁신체제 도입이 긴요하다.

그러나 대형 신형 원전일수록 경제성이 떨어지는 “규모의 불(不)경제”도 경계해야 한다. 또한 국내 전력소비자 부담을 경시하는 전문가들의 지적 오만함도 방지해야 한다.

따라서 인적자원의 질적 혁신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복합기술인 미래 원전 개발에 우리나라의 모든 전문역량이 집결될 수 있는 ‘열린’ 혁신공간 조성이 필요하다. 원자력 칸막이 문화를 혁파하고 진입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그래야만 엄정한 경제성 평가와 지속가능한 국제경쟁력이 확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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