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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 범죄학자·프로파일러


지난 단도직입 칼럼 ‘풍전등화 국정원’에 대해 국정원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미 국정원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과 전 농림부 장관이 <PD수첩>에 대해 제기한 고소 사건 판결에서 법원이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원칙적으로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 결정이나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적시한 내용을 국정원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 국정원은 왜 또다시 고소를 했을까? 우선 국정원의 불법 선거개입 의혹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자의 입을 막기 위해, 그리고 국민들을 겁주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국정원은 불법선거 개입 의혹에 추가해 형법상 무고죄라는 ‘또 하나의 범죄’ 혐의를 받는 셈이다. 


국정원 직원 경찰 출두 (출처: 경향DB)



더구나 일반적으로 명예훼손을 당한 경우. 따지고 감정을 드러낸 뒤 분을 참지 못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과 달리 국정원은 단도직입 칼럼이 게재된 이후 아무런 반응도 없다가 3주 가까이 지나서야 고소장을 냈다. 그만큼 전략적이고 기획적인 고소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 이면에는 무리한 고소를 해서라도 덮고 싶은 ‘불법선거 개입 의혹’이라는 ‘본질’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선관위와 경찰의 조사 요구에 불응하며 40시간 동안 대치해 ‘증거인멸’할 시간을 벌었다는 비판을 받은 뒤 휴대폰과 USB 저장장치 등을 제외하고 두 대의 컴퓨터만 제출했던 국정원 직원 김모씨. 경찰 수사를 통해 지난해 10월 이후 두 달 동안 하루 종일 오피스텔에서 16개의 서로 다른 ID를 이용해 ‘오늘의 유머’라는 진보성향 사이트 99개의 글에 ‘추천’ 혹은 ‘반대’를 눌러 특정 글을 베스트 목록에 올리거나 내리는 행위를 했고, 그 중 상당수가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고 문재인 후보에게 불리한 결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정시간대에 ‘요리’나 ‘연예’ 등 사이트 성격에 맞지 않는 글들을 집중적으로 클릭해 다른 글들을 보이지 않는 위치로 밀어내렸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런데 이에 대해 국정원과 김씨는 ‘종북 성향 사이트와 네티즌들을 감시하는 통상적인 업무’라고 주장하며 글 게시자 역추적 내용을 제시했다. 대통령 후보 관련 글 ‘추천’ ‘반대’나 ‘요리’ ‘연예’ 글 추천행위는 ‘사적인 취미활동’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글 게시자의 IP를 역추적했더니 종북 성향 글을 올린 사람이었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이러한 주장들은 더 큰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우선 국정원의 통상업무가 ‘대통령이나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게시하는 사람들을 추적하고 감시하는 것’인가? 둘째, 대통령이나 정부에 비판적이면 ‘종북’인가? 그리고 합법적인 업무라면, 왜 IP 추적장비와 시스템이 갖춰진 국정원이 아닌 민간 오피스텔에 상주하며, 보안성이 취약한 무선통신 접속을 이용해 방첩업무를 수행했는가? 


아울러 모든 국가기관과 부처의 ‘보안 감사’ 담당인 국정원 직원이 사찰업무와 개인 취미활동을 같은 컴퓨터로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런 질문들의 뒤에는 더 큰 질문이 도사리고 있다. 김씨 같은 업무를 부여받은 사람이 모두 몇 명이고 각기 어떤 사이트들을 할당받았는지? 대선준비 시점인 지난해 10월, 이 ‘작전’을 기획하고 지시한 책임자는 누구인지? 마지막으로 국정원이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야당, 진보성향 지식인이나 시민단체관계자, 혹은 누리꾼과 인터넷 사이트를 ‘안보 위해 대상’ 혹은 ‘종북’으로 규정하고 감시해 왔는지? 그리고 이들을 ‘종북’ ‘좌빨’로 부르는 사람들 뒤에 국정원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인지? 그래서 ‘종북 좌빨론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 2012 대통령 선거는 결국 ‘국정원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지? 스스로가 답하지 않는다면 국정조사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국민과 역사에 답을 들려줘야 할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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