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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발생한 ‘중국 어선 선장 사망사건’에 대한 항의 표시로 중국 외교부가 주중 한국 대사를 초치했다. 우리 국격과 국위가 어이없이 손상당하는 순간이다. 대한민국 해경은 적법하고 정당한 공무집행을 했다. 작은 도발로도 치명적인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바다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해상 법집행에 대한 폭력적인 저항은 결코 보호받을 수 없다. 이미 2008년과 2011년 불법조업 중국 선원이 휘두른 둔기와 흉기에 맞은 박경조 경위와 이청호 경장이 사망하는 등 비극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연간 20만척이 넘는 중국 어선이 우리 해역을 침범해 불법조업을 하고 있는데, 단속 건수는 연간 500건을 밑돌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올해는 현재까지 122건에 불과하다. 촘촘한 그물로 해저를 쓸고 다니는 중국 어선들의 무자비한 싹쓸이 불법조업 앞에서 생계의 터전을 강탈당하는 우리 어민의 피해와 어렵게 보호해온 어족자원의 파괴 상황을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이뿐만이 아니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한 집이 있는 동네는 다른 유리창들도 깨지고 범죄도 늘어난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은 바다에도 적용된다. 무더기 불법조업이 방치되는 작금의 상황은 해상국경이 수시로 침탈당하는 해양주권의 유린을 의미하며 이는 곧 안보위협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밀수와 밀입국 및 중요 범죄자들의 밀항 통로로 이용되는 해상치안 파괴 상태를 의미한다.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범’ 조희팔이 바로 이런 ‘불법조업 중국 어선을 이용한 밀항’으로 국가사법체계를 통째로 유린했다. 구원파 실질적 교주 유병언의 사망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의심도 허술한 우리 서해 경비망에서 기인한 바 크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대형함정 7척과 중형함정 10척, 항공기 3대 등으로 편대를 구성해 군산과 태안 광역, 목포 광역 등 3개 구역에서 15일부터 3일간 불법조업 외국어선에 대한 특별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출처 : 경향DB)


북방한계선(NLL)을 사수하겠다는 정부 당국, ‘북한이탈주민’들을 수개월 동안 격리조사하며 간첩을 잡으려다 증거조작과 인권유린 시비에 휘말린 국가정보원, ‘안보 위해사범’을 잡겠다며 통신업체들을 ‘온라인 사찰’에 동원하고 무리한 ‘사이버 명예훼손 수사’에 나서는 검찰이 독재의 우려를 낳는 나라에서 물리적 안보의 최일선인 바다를 이렇게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경악스럽다. 게다가 열악한 장비와 국가적 무관심 속에서 최소한의 해상안보와 해양주권을 지켜오던 해양경찰청은 해체의 위기 앞에 놓여 있다. 범죄수사와 정보 업무는 경찰청으로 이관하고, 해상경계활동과 구조업무에 전념하는 ‘해안경비대(가칭)’를 창설하겠다는 것이 청와대의 의중이라고 한다. 해경 해체로 인한 해상 치안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청와대는 ‘오히려 해상 보안을 강화하는 개혁’이라고 반박한다. 문제는, 해경 해체 계획이 세월호 참사 발생 원인과 구조 실패에 분노하는 국민 여론을 달래기 위한 ‘분풀이성 희생양 찾기’의 성격이 짙다는 점이다. 충분한 조사와 분석 끝에 나온 결론이 아닌, 즉흥적인 충격요법 제시라는 절차와 과정도 문제다.

법과 외교문제 등으로 해군의 해상 치안활동이 제약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해상 치안-경비-구난 조직의 역량은 해상주권의 핵심이다. 미국과 일본이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해 일본 경찰과 해상방위청이 추가로 참여하는 ‘외교-국방-경찰 상설협의체’를 구축하겠다는 이유다. 중국과 영토분쟁을 불사하며 일본이 실효지배 중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에 중국 어민이 상륙하는 등의 ‘회색지대 사태’(경찰과 자위대 출동의 경계에 있는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서로 다른 것 같지만, 해상 경계 경비와 정보, 수사 및 구호구난은 연계성과 상승효과를 통한 시너지를 발휘한다. 서로 다른 조직으로 분리한 협력 시스템보다 한 조직 내에서의 유기성이 더 효율적이다. 세월호 참사를 야기한 부패와 유착, 구조 실패를 부른 무능과 비효율을 철저히 규명해 엄중한 처벌과 구조와 관행 혁신을 하되, 해양치안 역량의 저하를 초래해서는 안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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