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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녹색세상

플라스틱 중독

opinionX 2019. 5. 3. 10:04

승리의 ‘타오르는 태양(버닝썬)’은 손님과 종업원 간의 폭력시비에서 시작돼 마약과 성폭력 가해 연예인 구속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을 태우고 사그라들게 할 기세다. 전혀 모르는 세계를 관전하며 배우 지망생인 아들이 행여 어두운(?) 세계에 발을 디딜까 하여 두려움에 떨었다. 한번 맛보면 영원히 헤어나지 못한다는 그 약물의 세계란 무엇일까. 심리학에서 반대과정이론(opponent-process theory)으로 그 기제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 몸은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본능이 있다. 그래서 외부 자극에 의해 처음 만들어지는 반응이 끝나면 그것과 상반된 다른 반응 상태가 나타나 균형을 잡아준다. 유쾌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자극은 이후 혐오적 느낌에 의해 대립되고, 처음에 혐오감을 준 자극은 유쾌한 느낌으로 대립된다. 예컨대 매운 고추를 먹게 되면 우리 뇌는 그것을 통증으로 자각한다. 그리고 아픔을 달래주기 위해 일종의 아편물질이 분비되는데 그 때문에 매운 걸 먹고 상쾌함을 느끼게 된다. 아찔한 놀이기구를 돈 내고 타는 이유도 극도의 공포 이후 극도의 쾌함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약물에 의존해 쾌락을 맛본 이후엔 그에 대립하는 극도의 불쾌감을 경험하기에 끊을 수 없다 한다. 

플라스틱의 광범위한 사용도 일종의 중독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스틱·목재 등 쓰레기들이 28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콰줄루나탈주 더반 항구 주변에 쌓여 있다. 이 지역에 최근 홍수가 나면서 해안을 따라 쓰레기들이 흘러들었다. 당국은 쓰레기 제거를 위한 대대적인 정비작업에 나섰다. 더반 _ AFP연합뉴스

“생산에 5초, 사용은 5분, 분해는 500년”이지만 플라스틱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알약부터 의류, 신발, 가방, 심지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도 모자라 한 손엔 플라스틱 컵에 빨대까지…. 지난 10년간 전 세계 플라스틱 총생산량은 42%나 증가하였고 현재 바다에는 27만t의 쓰레기가 떠도는 중이며, 2050년엔 해양쓰레기가 3배로 증가하여 ‘물 반 플라스틱 반’이 될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 우주여행도 꿈꾸는 세상에 일회용 플라스틱의 대안은 진정 없는 것일까? 

아일랜드 브랜드 기네스의 모회사인 디아지오는 지난달 15일 맥주 포장에 쓰이는 플라스틱을 100% 재활용 가능한 생분해성 판지로 대체할 것이며, 이를 위해 1600만파운드(약 238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하였다. 아디다스도 2024년까지 재활용 플라스틱만 사용하겠다 했고, 이케아는 2020년까지 자사의 모든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을 단계적으로 폐기하기로 약속했다. 우리나라 마켓컬리도 친환경 지퍼백을 도입했고, 배달의민족은 ‘일회용 숟가락 빼주세요’ 옵션을 장착했으나 그 사용량에 비하면 애교로 봐줄 만한 대안이다. 인터넷 시대에 걸맞게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연 기업체답게 창의적 해결책도 찾아주길 바란다. 플라스틱으로 돈 번 기업이 한둘이 아닐 텐데 여태 대체재가 안 나오는 게 이상하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는 지난해 ‘환경분야 노벨상’으로 알려진 ‘에니상(Eni Awards)’을 수상했다. 미생물을 이용해 지속 가능한 친환경 화학물질을 만드는 시스템 대사공학을 창시한 공로이다. 이 생물공학적 방법을 통해 인류 최대의 골칫거리로 등장한 썩지 않는 플라스틱을 착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내는 중이다. 세계 최초로 미생물을 활용해 친환경적으로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는 길이 조금씩 열리고 있어 희망적이다. 

지구한계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스웨덴 환경학자 요한 록스트룀은 <지구한계의 경계에서(Big World Small Planet)>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지배적인 서사는 유한한 지구, 무한한 물적 발전을 골자로 지구와 자연은 인간에게 한량없이 베풀어줄 수 있는 역량을 지녔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이제 넘쳐나는 환경적 고난이 사상 최초로 세계경제에 청구서를 내밀기 시작했다.” 

향정신성 약물은 불법이므로 국가가 처벌한다. 플라스틱 중독은 누가 처벌할 수 있을까.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답해주셨다. 신은 항상 용서한다. 인간은 때때로 용서한다. 자연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아멘.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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