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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녹색세상

DMZ, 부활의 땅

opinionX 2019. 4. 26. 10:49

가톨릭교회에서는 부활절 후에 ‘엠마오’를 간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10여㎞ 떨어진 마을로 추정된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후 예루살렘을 떠나가던 제자 두 명이 길에서 만난 예수를 엠마오에서 비로소 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루카복음 24장). ‘엠마오’는 이 만남을 기념하는 부활 나들이라 하겠다. 올해는 부활절 다음날 천주교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가 ‘DMZ생태연구소’에 요청해 마련한 비무장지대(DMZ) 생태탐방에 다녀왔다.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DMZ로 엠마오를 간 셈이다.

민통선 너머에서 만난 숲은 참으로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그러나 땅속에 매설된 수많은 지뢰는 비무장지대가 한반도 최고의 중무장지대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우리의 평화는 여전히 엄청난 무력으로 유지되고 있다. 지난해 4·27 판문점선언 이후 긴장 완화와 평화 분위기가 급속히 고조되며, DMZ에 매설된 지뢰 제거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말 남북 군사당국은 ‘남북군사분야합의서’에 따른 공동유해발굴을 위해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지뢰제거 작업을 실시했다. 남북의 화해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이지만, 지뢰 제거를 위해 해당 지역의 나무와 일정 깊이의 흙을 무차별로 베어내고 헤집는 것은 생태적으로 매우 폭력적이다. 과연 우리가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 우리가 전쟁으로 황폐하게 만들었고, 자연이 다시 풍요롭게 만든 곳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7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2016년 후반, 광장에 수백만의 촛불이 박근혜 정권을 흔들어놓자 민통선 안의 땅 값도 흔들렸다고 한다. 정권이 교체되고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가능할 수도 있는 ‘개발’ 기대 때문이다. 웃고 넘겨버릴 얘기만은 아니다. 남북 정상의 만남 이후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필두로 남북 교류와 협력에 관한 제안들이 봇물을 이루었다. DMZ를 둘러싸고 제안되는 사업에는 ‘생태’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지만, 어떻게든 개발을 하겠다는 속내만 더 드러나는 듯하다. 이래서야 한반도의 평화는 DMZ에는 폭력이 될 공산이 크다. 돈과 이윤에 사로잡히고 휘둘려 부끄러움을 상실한 우리의 자화상이다.

민통선 안 숲에는 너부러진 채 죽어 있는 나무들이 많았다. 하지만 숲속에서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다. 죽은 나무들은 숲에서 다른 생명들이 깃들고 자라는 터전으로, 뭇 생명의 근원으로 새롭게 변화한다. 자기를 내어줌으로써 새 생명을 키운다. 사람이 죽음을 심은 곳에서 자연은 생명을 일구어냈다. DMZ는 부활의 땅이다. 

예수는 못과 창에 찔린 상처를 그대로 지니고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십자가 상처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했던 예수의 삶, 그들의 편에서 불의한 권력에 끝까지 맞섰던 예수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우리를 그 삶으로 초대한다.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숲을 일궈낸 부활의 땅 DMZ에도 상처가 새겨져 있다. 지나친 단순화일지 모르지만, 이 상처는 서로 ‘더 많이’ 가지려는 탐욕의 충돌로 생겨났다. 지난 세월, 이 상처는 남북 간에 그리고 우리 남쪽 안에서 계속 깊어져왔다. 지뢰는 상처를 악화시키는 맹목적인 질주를 멈추라고 경고한다. 지뢰는 우리가 남북의 평화를 빌미로 DMZ를 그저 ‘소비’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지뢰는 사람에게 물리적인 제약과 위협이 분명하다. 동시에 지뢰는 효율과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우리의 배타적이고 무한한 욕망을 제어하는 강력한 상징이 될 수 있다. DMZ의 지뢰를 모두 제거하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반드시 능사도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돈과 이윤이 우리 삶의 원리가 된 지 오래다. 비무장지대라고 우리를 지배하는 삶의 방식에서 예외가 될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이럴 바엔 차라리, “DMZ에 지뢰를 허하라.” 엠마오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생각이다.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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