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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직접 소통은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을 지향합니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및 제안에 등장하는 문구다. 작년 8월19일 개설한 이래 지금까지 12만여건의 청원이 올라왔다고 한다. 매일 수백건이다. 30일간 20만명의 동의가 모아지면 청와대가 답한다는데, ‘응답하라 청와대’를 외치는 청원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개인 민원성 청원 등 별의별 게 다 있지만 입법사항에 속하는 청원이 주를 이룬다. 청와대가 개입할 수 없는 청원도 있고, 현행법상 수용 불가능한 것도 있다. 청와대는 청소년보호법 폐지, 낙태죄 폐지, 주취감형 폐지, 조두순 출소 반대, 가상통화 규제 반대 등에 대해 이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재용 항소심 판결에 분노한 국민들은 즉각 ‘정형식 판사 판결 특별감사’ 청원에 공감하여 최단 기간 20만명을 넘어섰다. 사회적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공론참여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크고 작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분노가 청원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이나 미성년자 성폭력 범죄자 종신형 처벌 청원도 게시판을 달구고 있다.

옆으로 누워 있는 세월호를 바로 세우기 위한 사전작업이 진행된 19일 오전 전남 목포신항에서 세월호를 이동시키기 위한 특수운송장비인 모듈 트랜스포터를 세월호 밑으로 진입시키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세월호는 오는 5월31일쯤 직립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주무 부처와 해당 구청이 어딘지 분명한데도 청와대로 몰린다. 국민권익위원회의 국민신문고도 있는데, 역시 청와대가 최고 권력기관이라는 증거인가. 모든 길은 청와대로 통하는가. 민주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도 최고 통치자에게 기대는 것은 민주주의가 덜 성숙해서 그런가. 우리는 여전히 왕권시대에 살고 있고 대통령이 제왕적이라서 그런가. 헌법 제26조에 따라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갖고 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 기본권으로 보장되고 국가의 의무인데 왜 문재인 정부 들어 청와대에 국민청원이 쇄도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번 정부가 소통의 마당을 열었기 때문이다. 모든 권력의 원천인 국민이 권력의 감시자로서, 또는 입법자의 위치에서 말하고 싶고 뭔가 할 말이 많음을 간파한 새 정부가 적극적 소통 방법을 찾은 것이다.

세월호 참사 뒤 ‘세월호 특별법’ 입법 청원에 600만명의 국민이 서명했지만 당시 청와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 닫은 정부였다. 청와대의 대통령은 구중궁궐의 왕처럼 국민과 단절된 채 고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촛불정부는 달랐다. 소통의 장을 펼친 것이다. 청와대가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읽었다. 속 시원한 답은 주지 못해도 국민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국민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게시판을 걸어놓은 것이다. 게시판을 잘 들여다보면 불신의 대상이 누군지도 알 수 있다. 사법 불신이나 국회 불신처럼 공적 성격의 분노도 있지만 악플 수준의 사적 감정표현도 있다. 청와대와 정부 부처가 할 수 없는 청원사항도 청와대로 몰려온다. 국회에 대한 불신이 커서 그렇다. 입법부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불만은 국회의원 최저시급청원으로 쏟아졌다. 국회의 입법 활동이 때론 정쟁으로, 때론 이해타산 때문에 지지부진하니 청와대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지난 촛불광장에서 울려 퍼진 목소리는 “권력은 나누고 시민은 참여한다”였다. 성난 시민은 민주적 참여를 갈망했다. 4년이나 5년마다 한 표 던지는 유권자로 만족할 수 없다. 언제나 주권자임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청원의 창이 북적대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의 벽을 실감한 국민이 많다는 증거다. 그렇다. 대한민국 모든 권력의 발원지인 국민이 발안하는 제도 없이는 민주주의를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청와대 게시판을 통해 국민발안제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확인했다.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입법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 내 손으로 수제 법률을 만드는 제도를 보장해야 한다. 헌법 개정안이나 법률안의 제출권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 국회와 정부에 기대지 말고 국민이 직접 입법경쟁을 벌이는 직접민주주의를 가미시키면 대의민주주의도 살아난다. 그래서 정치가 국민의 눈치를 살피도록 해야 한다.

국민발안제는 사회적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등장하는 집단적 분노를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한다. 부당하고 불합리한 현실을 보고도,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 공동체 시민이 아니다. 분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손으로 그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청와대가 추진하는 개헌논의에서 국민발안제가 뜨거운 의제가 되기를 바란다. 조직된 소수의 횡포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국민참여재판이나 공론화위원회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국민은 공적 임무를 충분히 해낼 능력과 자격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회와 역할이 주어지면 주권자로서 빛을 발할 준비된 국민이기 때문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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