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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개정으로 올해 고3 학생 중 만 18세가 되는 학생들이 투표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와 동등한 정치적 한 표를 가진 학생들이 교실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교사인 나에게도 무언가 낯설고 새롭게 다가온다. 적어도 고3 교실에서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이전과는 다른 의미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학교는 한동안 그 새로운 의미가 무엇인지 탐색하고 만들어가는 경험의 시간을 겪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학생들은 일방적인 가르침의 대상이었다. 그 가르침은 ‘내가 알려줄 테니 너는 그것을 받아들여라’라는 지배적 관계에서 이루어졌다. 봉건사회에서는 권력의 혈통을 가진 귀족들만 ‘말’할 수 있었고 그들의 말은 세상을 지배하는 질서가 되었다. 그리고 절대다수의 ‘말’은 들려지지 못했다.

지금도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말하기를 어려워한다. 이것은 교사들도 마찬가지이다. 공적 영역에서 ‘말’은 언제나 지위와 힘을 가진 사람들의 것이었고, 학생과 교사들은 ‘듣는 자’로 머물러야 했으며,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때로는 두려움과 처벌을 감수해야 했다. 들려지지 못한 억압된 목소리는 사적 영역이나 SNS를 타고 비난과 혐오, 거짓과 억측이 되어 우리의 공적인 마음을 분열시키고 아프게 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우리는 막대한 사회적 비효율성을 지속해서 겪고 있다.

안타깝게도 교사 또한 교실에서는 ‘말하는 자’로서 힘을 행사하게 된다. 교사나 교수들이 특정 이슈에 대해 자기 견해를 말하면 학생들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이것은 주장에 대한 찬반보다도 말하고 듣는 관계의 공정함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투표권은 주어졌으나 벌써부터 학생들의 정치적 발언과 참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염려스러운 것은 기성 사회가 그들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서로를 비난하거나 혐오하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모든 말이 공정하게 들려질 수만 있다면, 모든 차이는 결국 우리의 이해를 더욱 깊고 풍성하게 해주는 고마운 자원이 된다. 

우리의 염려는 학생들이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혐오와 억측으로 우리의 공적인 마음이 분열되고 상처받는 것이며, 그 상처가 학교현장에까지 퍼질 것에 대한 염려이다. 이러한 염려 때문에 그들이 생애 처음으로 행사하게 되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정치적 권리를 선거교육이나 정치적 중립이라는 명분으로 제한해서는 안될 것이다.

올해 투표에 참여하게 된 18세 청년 학생들을 환영하며, 기성세대로서 우리가 그들의 목소리를 공적인 영역으로 정중히 초대한다면 그들은 우려 대신 우리의 정치 현실에 새로운 역동을 선물할 것이다. 그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가 할 일은 학교의 수업과 지역사회를 통해 서로의 다름이 공정하게 들려질 수 있는 민주적인 참여와 관계를 배울 수 있도록, 의미 있는 교육적 경험을 모색하여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일이다.

<조춘애 광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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