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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치를 줄 알았던 대통령 선거를 봄에 치른다. 새 대통령이 직무를 시작할 날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벌써부터 각 후보 캠프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선수’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상 야권 대 야권의 선거다 보니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관련 인사들 모습이 자주 보인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 이런저런 지위를 누렸다며, 하다못해 자문위원 경력이라도 내세운다.

하지만 다른 분야는 몰라도 교육만큼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인사들이 자중했으면 한다. 민주진보 정부 10년간 공교육은 ‘교육 수요자’ ‘교실 붕괴’라는 말로 압축될 정도로 망가졌으니 말이다. 그 기간은 권위주의를 타파한다면서 교사의 정당한 권위까지 쓸어버린 시기였으며, ‘교육부’를 ‘교육인적자원부’로 바꾼 것에서 드러나듯, 교육을 철저히 산업의 논리, 경제의 논리에 종속시킨 시기였다.

‘수요자 중심 교육 서비스’라는 말까지 나왔다. 교육은 좌판에 펼쳐놓은 서비스 상품이 되었고, 교육자는 시장의 선택을 위해 경쟁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하지만 입시경쟁과 가족이기주의가 만연한 상태에서 수요자 중심주의는 입시교육 강화의 압력으로 나타났다. 자기 자녀의 입시 실적에 만족하지 못한 중산층 학부모들이 그 책임을 ‘공교육의 품질’로 돌렸고, 정부는 그것을 그대로 받았다. 그리하여 “공교육 강화를 통한 사교육비 절감”, 즉 학교의 입시학원화라는 어이없는 정책이 등장하면서 학교를 초토화시켰다.

흔히 교육계의 적폐로 지적되는 교육격차 심화, 하늘을 찌르는 대학 등록금, 수준별 분반 수업 등의 한 줄 세우기 경쟁교육, 교원능력계발평가, 성과급, 자사고와 특목고의 확대, 일제고사 등등의 것들도 모두 이 시기에 생겼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들을 이명박 정부의 것으로 알고 있지만, 국민의 정부가 씨를 뿌리고, 참여정부가 싹을 틔웠다. 이명박 정부는 다만 물을 주고 가꾸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공교육이 아주 무너지지 않은 것은 진보교육감의 대거 당선, 그리고 놀랍게도 박근혜 정부 덕분이다. 이른바 민주진보 정권이 만든 악습들이 엉뚱하게 박근혜 정부의 손으로 꽤 많이 폐지되었다. 학교에 A·B·C등급 딱지를 붙여 줄 세우기 경쟁을 시키던 학교평가, 학교성과급 폐지나 간소화 등은 박근혜 정부의 몇 안되는 업적이다. 적어도 공교육 정책에 관한 한 민주진보 정부는 수구보수 정부보다 크게 자랑할 만하지 않다.

2008년 2월 퇴임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겸손하게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억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이 말을 깊이 되새겨야 한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당시 “친노라고 표현되어 온 우리는 폐족입니다. 죄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과 같은 처지입니다”라고 울먹인 바 있다. 그들은 어디에서 실패하고, 누구에게 죄를 지었을까?

경제나 정치는 아니다. 그들이 반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곳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교육, 특히 공교육이다. 그리고 그 반성의 출발점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서 교육정책에 관여했다는 것을 경력으로 내세우며 새 정부의 자리를 탐하는 무리들을 냉정하게 뿌리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또 그 당시 교육정책에 관여했던 인사들 역시 양심이 있다면 다시 자리를 차지하겠다며 캠프 주변을 어슬렁거리지 말아야 한다. 다행히도 그들이 각 캠프에서 차가운 대접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권재원 |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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