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학생 지도에서 교사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대부분의 교사가 공부 잘하는 모범생 출신이라는 데 있다고들 한다. 공부에 흥미 없어 하고 활동적이며 순응적이지 않은 아이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비폭력 대화’를 주제로 한 교사 연수에서 선생님들과 ‘관찰’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평가가 들어가지 않은 관찰은 인간 지성의 최고 형태’라고 했는데 우리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우리의 익숙한 습관을 넘어 나 자신에게 어떻게 새로운 시각을 허락할 수 있을까? 특히 학생들을 바라볼 때 겉모습 너머 내면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나눈 적이 있다.
연수생들은 교사로서 학생을 만나 사용하는 말의 대부분이 평가와 판단의 말이란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평가와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고정된 시선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을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어떤 선생님은 “학생들이 쓴 글을 읽을 때”라고, 어떤 선생님은 “축제 때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볼 때”라고 했다.
한 선생님은 ‘가정방문을 갔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지각도 자주 하고 규칙도 자주 어겨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겪은 아이가 있었는데 가정방문을 해보니 기본적인 돌봄조차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밝은 모습으로 학교에 나와 대견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는데 가정방문을 다녀온 후 아이가 더 이상 문제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또 다른 선생님은 자신의 수업시간에 너무나 무기력하고 수업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는 학생이 있었는데 다른 교과 선생님 수업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학교와 교실이라는 제한된 공간과 자신의 수업시간에 보는 것만으로 학생을 판단하기 쉬운데,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우리 인식의 한계를 금방 알 수 있다.
가르치는 일이 도달해야만 하는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되면 우리는 조급해지고 엄격한 시선으로 학생을 바라보게 된다. 이러면 해야만 한다는 판단으로 강요의 화살을 무수히 날리게 된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과의 간극은 커진다.
교사의 고정된 시선 너머 각자 다른 빛깔로 생동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좀 더 온전히 다가갈 수 있을까?
그것은 상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판단이 들 때마다 자신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다양한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두고 살펴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온전함과 새로움을 허용해야 한다. 교사로서 아이들의 삶에 기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자신을 연민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 자신의 한계를 수용하며 새로운 도전에 열린 마음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것, 이것이 급변하는 척박한 교육현장 속에서 교사로서 아이들과 함께 소통하고 배움을 이어가기 위한 실마리가 아닐까 싶다.
<손연일 | 월곡중 교사>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고]상처받은 아이들 보듬을 ‘전문 의료소년원’ 설립 서둘러야 (0) | 2019.06.18 |
---|---|
[전우용의 우리시대]우파와 좌파의 시대 (0) | 2019.06.18 |
[속담말ㅆ·미]걱정이 반찬이면 상발이 무너진다 (0) | 2019.06.18 |
[천운영의 명랑한 뒷맛]젖꼭지와 곡소리 (0) | 2019.06.17 |
[NGO 발언대]윤지오로 장자연을 지우지 마라 (0) | 2019.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