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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0일, 검찰과거사위원회(이하 과거사위)는 ‘장자연 사건’에 대한 조사 및 심의 결과를 발표했다. 과거사위의 사건 제목은 ‘장자연 리스트 사건’이었고 결론은 ‘리스트 없다’였다. 제목은 과거사위의 관점을 반영하고, 관점은 사건 및 결과에 대한 해석을 지배한다. ‘리스트’가 핵심인데 핵심이 없으니 김빠진다. 자연스레 사건은 축소되고, ‘리스트’ 관련 논란 당사자에게 책임이 전가된다.

1차 조사대상에서 제외된 ‘장자연 사건’을 국민청원으로 대상 사건에 포함시키며 국민들이 밝히려 했던 것은 ‘고 장자연의 한 맺힌 죽음의 진실’이었다. 그러나 과거사위는 2009년 당시 수사검사의 부당한 불기소처분 및 주요 대상자에 대한 수사 미진, ‘조선일보 방 사장’ 관련 의혹에 대한 결과적 은폐, 주요 증거 확보 및 보존 과정의 부실 수사, 조선일보 관계자들의 경찰에 대한 압력과 협박 등을 확인했다면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고 다시 사건을 덮었다. ‘리스트 유무’에 집중한 심의는 성폭력 피해에 대한 충분한 사실과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리스트’에 대한 논쟁만을 남긴 채 검찰권 남용에 대해 면죄부를 주며 끝을 맺었다.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시민단체 관계자들이 2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고 장자연씨 사건’ 등의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장자연 사건’을 이렇게 끝낼 수 없다. 검찰 셀프 조사의 한계와 철저한 제 식구 감싸기의 ‘무소불위 권력기관’ 검찰의 실체를 확인했으니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여성단체들이 대검찰청 기습시위를 한 이유다. 이제 ‘죽음의 진실’을 밝히길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을 국회가 받아 안아야 한다. 특검을 통해 철저하게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 은폐에 대한 책임도 분명히 물어야 한다. 

그런데 과거사위 발표 이후 악의적인 흐름이 포착된다. 조선일보의 윤지오에 대한 공격이 그것이다. 지난 5월22일 “윤지오가 퍼뜨린 의혹…검증 없이 확성기 노릇 한 방송사들” 기사를 시작으로 24일 “장자연 전 남자친구 ‘윤지오 이름 한 번도 못 들어…고인에 치명적인 주장 잔인하다’”, 이어 6월5일엔 “윤지오의 ‘먹잇감’”이란 제목의 부국장 칼럼을 통해 “유명해지고 싶은”, “영악한”, “먹잇감” 등의 단어를 사용해 이전부터 있었던 여러 논란으로 인해 확산된 ‘의심’을 ‘확신’으로 바꾼다. 이후 윤지오에 대한 후원금 반환 집단소송과 사기혐의 고소, 홍준표 명예훼손 피소, 신변보호비용 사기 혐의 고발 등 각종 고소·고발이 끊이지 않는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5월23일 (출처:경향신문DB)

나는 윤지오를 모른다. 그러나 ‘장자연 사건’이 ‘윤지오 사건’으로 옮겨갈 때의 위험성은 안다. 규명되지 않은 사건의 핵심 증인에 대한 도덕적 손상은 결국 사건의 진실을 가리는 데 악용된다. 증언에 대한 진위는 다른 증언이나 정황증거 등을 통해 수사기관이 판단할 몫이지 여론재판의 대상이 아니다. 재조사에서 핵심 증인 채택과 그에 따른 경비 지불은 당연한 국가의 책무다. 그래서 6월12일 “윤지오, 또 고발돼…‘국가와 국민 속이고 호텔비 900만원 지원받아’”란 조선일보 보도와 같은 이유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민갑룡 경찰청장을 고발한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박민식 변호사의 행보는 악의적이라 느낀다.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국회가 나서서 ‘장자연 죽음의 진실’과 사건 은폐 이유를 밝히고, 책임을 묻는 것이다. ‘윤지오’를 이유로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국회의원들을 압박해서는 안된다. 윤지오로 장자연을 지우지 마라.

<김민문정 |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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