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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돌아가셨다. 92세 노환으로 생을 마감했으니 호상이라면 호상이었다. 1년가량 알츠하이머를 앓았으며 마지막 두어 달은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 상태에서 고요히 앉아 지냈고 열흘쯤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가 그곳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그 열흘 동안 담당의는 매번 오늘밤이나 내일이 될 거라 일렀고, 그래서 우리는 보호자대기실 의자에 대기상태로 앉아 30분으로 제한된 하루 두 번의 면회시간을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매일 새로운 시신이 실려 나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면회시간 외 중환자실 문이 열리면 그래서 눈물부터 새어나오며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자정을 막 넘어선 시간 그녀의 이름이 불렸고, 우리는 진짜 마지막 작별을 고하기 위해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마지막 숨을 거두었을 때 침상 주변으로 황급히 커튼이 둘러쳐졌다. 죽음을 목전에 둔 다른 환자들을 위한 배려였다. 우리는 최대한 숨죽여 울었다.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조부모와 함께 살아야만 했던 내 오라비는, 엄마 대신 할머니의 젖꼭지를 만지며 영·유아기를 보냈는데, 대문과 초인종이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할머니 젖꼭지를 초인종 삼아 누르며 놀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딩동, 문 열어주세요 함니, 저 왔어요 함니, 딩동딩동. 나는 그 젖꼭지가 분홍빛으로 아주 조그마하고 어여뻤다고 기억한다. 그녀와 때때로 목욕탕을 다니며 서로 때를 밀어주곤 했는데, 나는 할매 젖꼭지가 어쩜 이렇게 아가 젖꼭지 같냐 물으며, 아가 볼을 쥐듯 장난스럽게 꼬집기도 했더랬다. 그녀의 젖을 빨아먹고 자란 내 어머니는 그걸 팥 알갱이라 불렀다. 너무 작아 물고 빨기 힘들어서인지 젖먹이 때 꽤나 신경질을 부렸다는 말은 그녀가 기억한 내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자식에서 손주새끼에게까지 이어진 그녀의 젖꼭지. 우리는 그렇게 망자의 젖꼭지를 추억하며 키득키득 울컥울컥 장례를 치렀다. 불경스럽지만 따스해지는, 작고 어여쁜 팥 알갱이였다. 

장례는 고즈넉했다. 가까운 일가친척들이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고 안부를 주고받으며 슬픔을 나눴다. 그렇게 고요한 애도를 하고 있던 중, 저 입구에서부터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렁차고도 요란한 곡소리와 함께 이윽고 도착한 한 여인. 신발은 벗는 둥 마는 둥 제단 앞으로 달려가더니 바닥에 그대로 쓰러져 땅을 치며 곡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아이고 형님 여기냐 저기냐 어디 계시오. 누구누구가 왔는데 형님은 왜 거기 그러고 계시오. 아이고 아이고 형님은 나한테 이리저리 잘해줬는데, 나는 자주 찾아보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잘못한 죄인이요. 형님 없이 나는 어떻게 살란 말이요 아이고 아이고 좋은 세상으로 가시오 나도 곧 따라가겠소. 대략 그런 내용이었다.

슬프기로야 어미 잃은 자식만 하겠느냐 그만하라 누군가 만류해도 여인은 곡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말릴수록 곡소리는 더욱 과격해졌다. 어느 순간 고모할머니 되시는 분이 합류해 서로 끌어안고 밀쳐가며 곡을 보태고 나니, 완벽한 중창의 화음을 가진 리드미컬한 곡소리로 완성되었다. 그들은 기진맥진할 때까지 울었다. 말린다고 끝낼 성질의 것이 아닌 듯했다. 들어가는 인사말부터 나오는 다짐말까지, 아이고 아이고 끝을 봐야만 끝낼 수 있는, 한 편의 서사시. 곡소리라기보다는 남도의 창을 듣는 느낌이었다. 두 여인의 화음은 미리 연습이라도 한 듯 완벽하게 조화로웠다. 요즘은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곡을 마친 두 여인의 눈에는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눈물이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슬픔을 갖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 여인들은 듣고 배운 바대로 예를 갖춰 최대한의 애도절차를 밟았을 뿐이다. 

그런 곡소리를 처음 들은 것은 할아버지의 장례 때였다. 30여년 전이었고, 어린아이였던 나는 할아버지의 죽음보다 할머니의 곡소리가 더 무서웠다. 울음소리는 기괴하고 가락은 지나치게 곡진했으므로. 상복을 입은 여자들이 땅을 치며 온몸을 흔들며 발작 같기도 발악 같기도 한풀이 같기도 생떼 같기도 한 울음을 이어갈 때, 슬픔을 나누는 느낌보다는 요상한 반감이 들었다. 할머니는 그 후로도 제사 때마다 꼭 그와 같은 곡소리를 냈다. 아이고 아이고로 시작해 부르고 찾고 대화하고 인사하고 다시 아이고 아이고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 그것이 그녀들이 배운 애도의 예법이었을 것이다.

그날 할머니를 보내며 그 곡진한 곡소리를 들려준 여인이 누구인지 나는 잘 모른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요즘 같은 세상에 무슨 곡소리냐며 고개를 저었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 여인이 고마웠다. 내 할머니가 해왔던 방식 그대로 곡소리를 완성해줄 사람이 얼마나 남아 있겠는가. 자식도 손주도 해줄 수 없었던 그 일. 그 소리는 얼마 안 가 사라질 것이다. 살아 있는 육성으로는 영영 들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런 현실이 묘하게 슬프게 다가왔다. 그 여인이 죽으면 누가 곡을 해주려나. 아이고 아이고. 어쩐지 그 소리가 초인종 소리 같았다. 저 왔어요 딩동, 문 열어주세요 딩동, 저도 언젠가 갈게요 딩동. 할머니 젖꼭지를 누르며 좋아라하던 내 오라비처럼. 젖꼭지의 기억을 공유하는 내 가족처럼. 저 세상의 문을 두들기는, 딩동 아이고 아이고 딩동.

<천운영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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