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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차별·고통받는 사람들 이해·공감이 필요하다”
어쭙잖게 해본 학생운동의 경험 때문인지 개인 대 개인의 관계보다는 오히려 집단과의 관계에서 소통과 설득의 실력을 발휘한 것 같다.
지금의 목동아파트는 서울에서 좋은 곳으로 평이 나 있지만 전에는 논밭이고 둑방 아래는 판자촌이 빽빽했다. 이동철(나중에 국회의원이 된 이철용)이 쓴 소설 <목동 아줌마>에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비참하다 할 빈민지대였다.
그곳에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신시가지 계획이 발표되니 혼란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시 당국이 판자촌 주민이나 세입자에 관한 대책을 제시하지 않은 원인도 있다. 경찰 통계로 데모가 100번 이상 있었다고 한다. 한때는 부구청장이 납치되었다고 와전되어 긴장되기도 했다.
첫 데모가 났을 때다. 수백명의 주민들이 양화교를 점거하고 김포가도를 차단했다. 그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었던 나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달려가 데모 군중 속을 뚫고 들어갔다. 성난 데모 군중 속에서 혹시라도 망신이나 폭행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혼자 그들 속으로 들어가 악수를 하고 의견을 들었다. 그게 분수령과도 같았다고 할까. 그후로 나는 판자촌 주민·세입자들과 격의없는 관계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때 만에 하나라도 내가 경찰 저지선 안에 있는 데모 군중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경찰들 뒤에 있었더라면 그들과의 관계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후로 그들은 나를 의지하고 찾아와 상의를 했다.
노동부에 있을 때 한국노총 외에 또 하나의 노총이 생겨 난제가 되었다. 지금 민주노총이라는 그 노총 말이다. 복수노조 금지라는 법제 때문이었다. 한국노총은 정부의 향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그때까지 정부 방침은 새 노총을 묵살하는 것이었다. 나는 덩어리가 크고 대기업 중심이라 노사관계에서 중요한 그들을 계속 무시하는 것은 마치 쫓기던 타조가 모래 속에 머리를 박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고 그들과 대화하기로 마음 먹었다.
우선 그들을 ‘불법’ 노조 운운하는 노동부의 표현을 ‘법외(法外)’ 노조로 바꾸라고 지시하고 그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그때 ‘빨갱이’ 장관 운운의 모함도 나왔다. 미 대사관의 카트먼 정무참사관까지 그런 소문을 나에게 전해주었을 정도였다. 나는 그에게 “ ‘레드’(워런 비티 주연의 존 리드에 관한 영화)를 좋아한다”고 농을 쳤다. 민주노총의 합법화는 결국 김영삼 정권 말기에 엄청난 노동대란을 거치며 길을 트게 되었다.
얼마 전 관훈클럽의 한 모임에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 때 “지난날 신문 사설을 오래 쓰다 보니 그것이 버릇이 되어 좋다 나쁘다 분명히 이야기하기보다는 양쪽에 일리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어중간한 선에서 결론을 내리는 글쓰기 습성이 되어 후회가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런 논법이 설득력이 있는 게 아니냐는 후배기자의 의견도 나왔다.
그후 민주노동당 주간지 ‘진보정치’에 긴 인터뷰를 하게 됐다. 나는 이번에는 분명하게 말했다.
그런데 또 버릇이 살아났다. 민주노동당이 MB 퇴진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했다기에 불가하다고 말한 것이다. 자칫 이솝 우화의 ‘늑대 소년’ 이야기처럼 “늑대다! 늑대다!”라고 계속 소리칠 때 국민의 불신을 받을 수도 있다는 설명을 했다. 투쟁이란 국민들의 공감과 지지가 있어야만 하며 거기에 맞게 단계단계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인터뷰에서 보수 언론들의 민주노총에 대한 몰매주기와 같은, 눈에 띄는 판에 관해서도 말했다. 성당의 프레스코화는 가까이서 보면 금이 많이 가 있다. 갈라진 금 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전체로는 아름답다. 민주노총의 결함을 지적하는 것은 물론 필요한 일이고, 그들도 크게 반성해 시정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6월 항쟁 이후 형성된 민주노총의 역사성과 현대 한국 정치사회에서 갖는 의의 등 전체적 맥락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영어에 Underdog란 표현이 있다. 불리한, 차별받는, 고통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양식 있는 인간으로의 이해와 공감이 소통과 설득의 바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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