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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7월10일, 새누리당 대선 후보 출마선언을 하면서 ‘국민 행복’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며,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복지의 확대”를 “국민 행복을 위한 3대 핵심 과제”로 삼으셨습니다. 2012년 11월16일에 다시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면서 “경제적 약자 권익 보호, 공정거래 관련법 개선, 대기업 집단 관련 불법행위와 총수 일가 규제, 기업지배구조 개선, 금산분리 강화” 등을 경제민주화 5대 분야로 나누고 35개 실천과제를 제시하셨습니다.

하지만 <나부터 세상을 바꿀 순 없을까?>(강수돌, 이상북스)에 따르면 “쌍용자동차 국정조사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인 기초연금 제공과 4대 중증환자 부담 무료화, 대학 반값등록금과 고교 무상교육, 군복무 기간 단축, 그리고 정리해고 요건 강화와 경제민주화를 약속했던 박근혜 대통령 공약(公約)이 시나브로 공약(空約)”으로 끝났습니다. “심지어 ‘국민이 반대하면 하지 않겠다’던 공공부문 민영화조차 ‘수서발 KTX 법인화’ 사례와 같이 시험대에 올라” 있습니다.

꽃봉오리 같은 목숨을 대거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터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현장으로 달려가셔서 피해자 가족과 대화를 나누며 많은 ‘공약’을 즉석에서 하셨습니다. 복지부동하는 관료들을 ‘발본색원’ 혹은 ‘일벌백계’하겠다며 으름장을 수없이 놓았지만 부하들이 여전히 눈치만 보며 꼼짝하지 않으니 직접 달려간 충정만큼은 충분히 이해되었습니다.

하지만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올해 들어서 갑자기 세월호처럼 방향을 급선회하여 ‘규제와의 전쟁’을 선포하신 모습과 오버랩 되어 나타났습니다. “규제는 암덩어리”라는 보수 언론들의 아우성과 함께요. “온 국민이 침통에 빠진 세월호 참사는 MB 정권이 규제를 푼 엉터리 선박개조의 결과”이며 “MB 정권의 기업하기 좋은 ‘비즈니스 프렌드리’의 연장선이라는 일부의 비판을 박 대통령은 귀담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이번 재앙은 비록 MB 정부가 뿌린 씨앗 때문이라 하더라도 박 대통령도 지금 새로운 악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제발 명심해주셨으면 합니다.

승객들에겐 ‘가만히 있으라’ 안내 방송하곤 자신들만 무전기로 연락하며 먼저 빠져나온 정신 나간 선장과 선원들, 늦장 구조에 나선 해경과 안일하게 초동 긴급대처를 못한 우왕좌왕 재난대책본부,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정부의 무능력을 비판하는 희생자 가족들과 시민들을 “북괴의 지령에 놀아나는 좌파단체와 좌파 사이버 테러리스트”로 몰아간 새누리당 한기호 최고위원, 기념사진 찍겠다며 피해자 가족들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요구한 안전행정부 국장 등과 자신이 한 공약을 거의 모두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재벌의 하수인 역할을 자처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차이를 저는 전혀 못 느끼겠더군요.


강수돌 교수는 “규제를 푼다는 것은 돈벌이 기업의 자유를 신장시키겠다는 것이며, 법질서를 세운다는 것은 파업하는 노동자나 비판적 지식인 등 모든 저항 세력을 척결하겠다는 뜻이다. 겉과 속이 다르다. 이것은 결국 지난 50년간의 성장정책과 다르지 않다”고 진단했습니다.

대학교수 한 분이 제게 보낸 사발통문 메일에는 “대통령은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이다. 책임지는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정치 지도자에게 필요한 절대적 자질은 국민과의 소통과 공약을 지키는 신뢰이다. 안내 방송만 믿고 끝까지 남은 학생들만 희생당한 세월호는 오늘 한국 현실의 표본이다. 진리의 전당인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무얼 가르쳐야 하는지, 깨어 있는 시민교육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제 진정한 지도자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힘>(더난출판)의 저자인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는 “자신의 에너지를 다 소진해버리고 탈진 상태에 빠져버린”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 환자가 모든 직업군에서 크게 늘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합니다. “자신의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자신을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마치 계기판에 연료부족을 알리는 경고등이 켜져 있는데도 계속 달리다가 멈춰선 자동차와 같다.” 이게 바로 세월호이기도 하고 한국사회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져 갑니다. 기술의 발달로 우리의 일자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는 바람에 정말 대책 없이 당하는 경우가 갈수록 많아집니다. 더구나 ‘세월호 침몰’ 같은 놀라운 사건들이 우리의 삶을 갈가리 찢어놓습니다.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국민들은 정말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습니다.

강수돌 교수는 이런 때에 유행하는 것이 “강한 영웅을 찾는 구세주 담론”과 “자기계발, 웰빙, 힐링 등 개별 경쟁력 담론”이라고 말합니다.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는 아마도 ‘구세주 담론’에 힘입은 바가 클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강 교수는 “구세주건 개인적 힐링이건, 돈과 시간만 들고 결국 공허해진다. 우리에게 절실한 건 정치·경제, 사회·문화, 교육·노동 등 삶의 구조 전반을 혁신하는 ‘사회적 힐링’”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나부터’ 창의적 변화에 동참하면서 친구나 이웃과 ‘더불어’ 즐거운 마음으로 ‘사회적 힐링’을 같이 만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만 “남녀노소 모두 활기와 생기가 넘치는 공동체,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생태마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니까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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