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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출판시장은 처절하게 추락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성장을 구가하던 아동서적과 청소년 책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지금 우리 출판의 그림책 만드는 수준은 세계 최고입니다. 한때 우리는 영국의 DK나 프랑스의 갈리마르가 만들었던 책들을 놓고 감탄했지만 지금은 우리도 이만큼 만들 수 있다고 큰소리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그림책이 해마다 세계적인 상을 수상하는 것이 우연만은 아닐 정도로 눈부신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아울러 청소년 도서의 수준도 크게 일취월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잘 만들어도 별로 팔리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부활시킨 일제고사로 말미암아 책을 읽히지 않는 학교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을 문제풀이 기계로 만들어버린 일제고사는 성적에 따라 학교를 줄 세우고 학생의 신분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0교시와 야간자율학습, 휴일 등교 등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바람에 코흘리개 유치원생까지 사교육 시장에 내몰리는 형편이다 보니 아이들이 책 읽을 시간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게다가 4대강 사업을 하느라 학교도서관이 책을 구입해야 하는 알량한 예산마저 대폭 삭감해 버렸습니다.
서울 교보문고의 판매대에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문제집이 쌓여 있다. (출처;경향DB)
이명박 정부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려는 교육을 아예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노무현 정권 후반인 2006년에 109명, 2007년에 104명, 2008년에 109명 등 모두 367명의 사서교사를 새로 임용해 3년 사이 두 배 이상 늘어났지만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겨우 34명 임명에 그쳤습니다. 그나마 2011년 이후 3년 동안은 결원보충으로 달랑 한 명만 임명했습니다. 이러고서야 바람직한 독서교육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을까요. 그러니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에다 출산율이 세계 최하위 수준이 된 것 아닐까요. 최근의 정치판을 뜨겁게 달군 안철수는 사실상 자신의 출마 이유를 밝힌 <안철수의 생각>(김영사)에서 한국을 “한마디로 지금 가장 불행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회”로 규정했습니다.
안철수는 더 구체적으로 우리 현실을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경제 양극화와 실업, 비정규직, 가계부채 등 우울한 문제들이 쌓여 있죠. 10대들은 입시위주의 경쟁교육에 시들어가고, 20대는 비싼 등록금과 취업 등으로 고민하죠. 또 30·40대는 자녀의 사교육비와 집값, 전셋값으로 걱정이 태산이고요. 40·50대는 자녀들의 취업 걱정과 준비가 안된 본인들의 노후문제가 있고, 60대 이상은 생계와 건강문제 등 가족 구성원 거의 대부분이 불안한 게 우리 사회의 모습”이라고요.
현실이 이러니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출판시장에서 관통한 유일한 키워드가 자기치유(self-healing)였습니다. 늘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외치는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을 농단하는 사이에 국민은 위로의 마음을 담은 공감의 한 줄 어록에 심신을 달랬습니다. 올해는 집착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처럼 여겨지는 스님들의 말씀에 넋을 놓고 말았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말을 하지 못하는 인형인 ‘브라우니’에게 표정을 그려 넣으며 고통을 달랬고, <런닝맨>의 ‘능력자’ 김종국의 초감각에 열광했습니다. <개그콘서트>의 허무개그인 ‘네 가지’의 하소연과 ‘용감한 녀석들’의 용기에 울분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그대들이 말하는 사대의 예, 나에겐 사대의 예보다 내 백성들의 목숨이 백 곱절 천 곱절 더 중요하단 말이오!”라고 외치는 가짜 왕(이병헌 분)에게 도승지 허균(류승룡 분)이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왕, 진정 그것이 그대가 꿈꾸는 왕이라면 그 꿈 내가 이뤄 드리리다”라고 제안을 하는 모습이나 <늑대소년>에서 47년 만에 마을로 돌아온 백발의 여주인공이 “기다려. 나 다시 올게”라고 쓴 자신의 마지막 편지 하나만 믿고 47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늑대소년을 발견하고 오열하는 모습에 함께 넋 놓고 울기도 했습니다. 또 카카오톡이 유행시킨 애니팡, 캔디팡, 드래곤 플라이트 등의 게임을 하며 시간만 투자하면 게임 실력과 점수 앞에 누구나 평등한 가상현실에 중독되어 밤을 지새웠습니다.
5년 전 이맘때 한 역사학자는 새로 출범할 이명박 정권이 그래도 경제 하나는 살리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기대감에 “바닷물이 짠지 어떤지는 새끼손가락으로 찍어봐서 간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지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배가 터지도록 바닷물을 마셔봐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새로운 5년을 이끌어갈 대통령 선거가 내일 치러집니다. 지하경제 활성화, 5점8조, 이산화가스, 고위공직처비리수사처, 솔선을 수범, 바쁜 벌꿀, 전화위기의 계기, 민혁당, 대통령직 사퇴 등의 말실수를 연발하는 박근혜 후보에게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 대한 의견을 물으니 마치 이미 대통령이나 된 것처럼 “그러니까 대통령하려는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하더군요. 순발력과 재치는 지적 기반에서 나오는 법입니다. 우리가 과연 박 후보에게 험난한 국제정세를 헤쳐 나갈 지혜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어떠신가요? 다시 5년간 바닥이 드러나도록 바닷물을 퍼마셔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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