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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인천 부평공단 내 중소기업 사장들과 홍어 안주에 막걸리를 나눌 자리가 있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가 ‘최저임금’으로 이어지는 순간 험한 이야기들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 정치 한다는 사람들은 자기들 표만 생각한다. 정부와 여야가 한목소리로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겠다고들 하는데, 그럼 우리 같은 영세 기업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 지친다 지쳐.” “이번엔 진짜 기업 하는 사람들이 머리띠라도 묶고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가야 한다.” 전경련도 이달 초 “최저임금 오르면 중소기업의 70% 이상이 사업이나 채용 규모를 줄일 것”이라는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여당이 이례적으로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나서고 미국에서도 시급 15달러 소식이 잇따르는 등 어느 때보다도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중소기업 사장들과 자영업자들의 반응은 차갑다 못해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이들의 탄식을 단순히 해마다 반복되는 ‘뻔한 불만’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도 될까. 올해 법으로 정해진 최저시급은 5580원이다. 8시간 근무 기준 일급은 4만4680원. 월급으로는 116만6220원, 연간으로는 1399만4640원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6월29일까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된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수치만으로는 세계 중위권 정도다. 문제는 한국의 물가 수준 등을 감안할 경우다. OECD는 그 나라 중위소득의 50%에 미달할 때 ‘빈곤층’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주당 최소 66시간 이상을 일해야만 빈곤층에서 간신히 탈피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2013년 기준). 소득이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노동자 비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편이다. 2013년 기준 한국은 14.7%이지만 미국(4.3%)을 비롯해 뉴질랜드(2.5%), 일본(2%) 등은 우리와 큰 차이를 보였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 대폭 인상 여론은 어느 때보다 높다. 경제개혁연구소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1000명 중 55.2%는 ‘저소득층 생계 보장과 경제활성화를 위해 대폭 인상해야 한다’고 답했다. 인상폭으로는 민주노총과 정의당이 1만원을 내걸고 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도 미국 MIT가 설계한 모델로 추산한 결과 ‘출산과 양육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최저임금 수준은 7466~1만3128원’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최저임금 1만원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상 논리만 갖고서는 불가능하다. 전경련·경총 같은 대기업 집단이 중소기업들의 불만을 앞세워 소폭 인상으로 유도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대폭 인상이 되더라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불만과 항의를 어떻게 할지도 문제다.

민주노총·한국노총·민변 등 최저임금연대 회원들이 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16년 최저임금을 시급 1만원으로 인상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두 가지가 시급하다. 하나는 대화·소통이다. 정부·여당조차 대폭 인상을 꺼내든 이유는 최저임금 인상이 내수를 늘려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에서 노무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0%가량인데 최저임금 인상이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체의 경영에 직접 미치는 영향보다 소비 증가와 이를 통한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소득주도 성장’ 논리가 공감대를 이뤄야 한다. 두번째로는 이번 기회에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근본적 고통을 경감해 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소기업 제조원가가 올라도 대기업 납품단가는 낮아지는 왜곡된 하청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는 최저임금 논의와 동시에 진행되어야만 한다. 정의당이 내건 종업원 5명 안팎의 영세 자영업체에 대한 카드 수수료 1% 추가 인하,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에 대한 부담 경감, 안심전환대출 같은 공적 부조 신설 등도 적극 도입해야 한다.

최저임금 논의는 이제 경제개혁 논의로 전환되어야 한다. 저소득 노동자의 처우 개선은 기본이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모두 최저임금 인상 논쟁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도록 논의의 장을 활짝 열자.


한대광 비즈ⓝ라이프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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