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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년을 맞아 3월부터 5월까지 독일에서 지냈다. 그사이 독일 사회의 3가지 현상이 눈에 띄었다. 그 첫째가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 중동이나 리비아, 소말리아, 에리트레아 등 아프리카에서 유럽 중앙부로 들어가고자 하는 난민 내지 이민 행렬이다. 이들은 브로커에게 큰돈을 내고 목숨을 걸고 불법 진입을 시도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국경 수비대나 경찰에 걸려 강제 출국당하거나 운이 나쁜 경우 망망대해 지중해에서 생명을 잃는다. 일례로, 2015년 4월에만도 큰 사고가 두 건이나 터졌는데, 14일에 북아프리카 리비아에서 유럽 남단 이탈리아로 가던 불법 이민선이 난파하여 400명 이상 죽었고 19일에도 리비아발 밀항선이 파도에 휩쓸려 900여명이 죽었다. 지난해에도 약 20만명이 밀항선을 타고 유럽으로 들어가려다 비슷한 사고로 3000명 이상이 죽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엔난민기구(UNHCR)가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비인간적 상황을 개선하라고 촉구하지만 메아리에 그칠 뿐이다. 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사이에 있는 섬 몰타공화국의 조셉 무스카트 총리도 이미 지난해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유럽이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질까?”라며 “우리는 지중해에 난민 묘지를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둘째로, 현재 독일의 노동시장은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보이나, 통계수치를 보면 한 달에 450유로(약 60만원)를 받고 아무 세금도 내지 않는 미니잡 종사자가 무려 750만명 수준이고 등록된 실업자가 300만명에 육박한다. 물론 미니잡 종사자 중 부업으로 하는 이들은 250만명 정도인데 이들은 배우자의 수입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상태이기에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500만명 정도는 순수한 미니잡으로 살아야 한다. 이들은 세금이나 사회보험료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장점을 누리지만, 정규직으로 상승하도록 돕는 발판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한번 미니잡이면 평생 미니잡’이란 의미에서 ‘노동시장의 덫’이 된다. 게다가 노후가 되면 아무 연금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빈곤에 시달릴 위험도 크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독일식 사회보장체제에 균열이 갈 가능성까지 생긴다. 뉘른베르크 연방 고용청에서 만난 T 리츠만 박사는 “미니잡이 독일의 고용률을 높인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미니잡은 (대)학생들의 용돈벌이나 연금 받는 노인의 소일거리, 그리고 아기 키우는 중년 여성의 부업엔 도움이 되나, 제대로 된 일자리가 아니기에 고용률 증대엔 별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이 실업과 미니잡 또는 파견노동 사이를 그네 타듯 왔다 갔다 한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 특이한 점이, 일주일이 멀다 하고 정신없이 계속되는 파업 물결이다. 3월 이후 석 달 동안 경고 파업 내지 전면 파업을 한 곳만 해도, 루프트한자 항공사 파업, 우체국 파업, 지하철 및 철도 기관사 파업, 판사 파업, 병원 파업, 유치원 내지 보육 교사 파업, 월세 인상에 반대하는 세입자 운동 등 무려 일곱 분야다.

한국 판사들은 노동자 파업이라면 두드러기 반응을 보이지만 독일 판사들은 정부의 인원 감축 정책에 반대 파업을 벌인다. 이런 점을 보면, 한국서 보는 독일과는 달리 독일 사회도 결코 ‘산업 평화’의 나라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혼란한 나라도 아니다. 파업은 파업대로 하되, 그래서 뭔가 좀 불편한 구석이 있지만 결코 혼란은 없다. 파업이 벌어져도 ‘사회 평화’는 여전히 좋은 편이다.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독일 자본주의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계속 달려가는지 모른다. 잦은 파업이 일종의 ‘가스 배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동시에 독일 사람들이나 사회 분위기가 이런 파업의 불편함을 참고 수용하는 폭이 대단히 크다. 한국처럼 ‘좌빨, 종북’으로 몰아가는 언론이나 ‘꼴통’도 없다. 게다가 노사 양쪽이 끈질기게 협상하고 교섭한다. 그리고 공권력 투입 같은 건 거의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반 시민들이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파업권을 기본적 시민권으로 당연시한다는 점이다.

지난 4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서울광장에서 총파업 대회를 열고 있다. 민주노총은 노동시장 구조개혁 저지, 공적연금 강화 및 공무원연금 개악저지,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등을 요구하며 3년 만에 총파업에 돌입했다. (출처 : 경향DB)


수백명의 세월호 희생자가 생겨도 진상 규명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한국,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초기 대응에 실패하여 순식간에 감염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한국, 수백일 계속되는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도 억압하는 한국, 이런 한국이 수시로 나치의 역사적 과오를 반성하는 독일을 따라가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지금도 세월호 농성장에서, 노동자 파업 현장에서, 그리고 차별과 억압이 있는 모든 곳에서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고, 인간적 대안을 고민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넘어 통 큰 연대가 필요하다.


강수돌 | 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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