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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비비언 마이어를 찾아서>는 창작과 발표, 소통 행위에 대한 새로운 방식을 제기한다. 비비언 마이어는 누구인가. 아무도 모른다. 아니 아무도 몰랐다. 그녀의 직업은 보모였다. 그녀는 사진을 찍었다. 보모일과 사진찍기,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주인공 비비언 마이어는 2007년, 존 말루프라는 시카고 청년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역사책 작가인 존 말루프는 집필에 사용할 사진을 찾던 중 동네 경매장터에서 범상치 않은 박스를 주목했다. 380달러에 구입해 뚜껑을 열어보니 비비언 마이어라는 여자가 남긴 유품들이 쏟아져나왔다.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를 비롯, 다양한 카메라들과 10만장의 네거티브 필름들, 집에서 자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상들이었다. 필름에는 1950~1960년대 뉴욕과 시카고의 거리와 행인, 집과 아이들 모습이 담겨 있었다. 존 말루프는 감정(鑑定) 행위로 SNS에 몇 장의 사진을 올렸고, 전문가와 아마추어 모두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는 비비언 마이어의 유품을 토대로 탐정처럼 행적을 추적해나갔다. 그 과정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되었다.

비비언 마이어라는 존재는 존 말루프가 발굴한 일화에서 출발, 하나의 현상, 하나의 신화가 되어가고 있다. 창작자의 작품을 세상에 알린 첫 번째 통로가 SNS였다는 것, 단순히 청년 감독의 다큐멘터리 데뷔작에 그치지 않고 20세기 사진예술사에 비비언 마이어라는 희귀한 개성을 등재시켰다는 것이 세인의 관심을 끈다. 존 말루프라는 창조적인 수집가에 의해 평생 보모로 이 집 저 집 전전하며 살다가 죽어간 불쌍한 여자의 일생이 20세기 미국적인 삶의 풍경을 기록한 창조자의 여정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결정적인 것은, 창작 행위 자체에만 주력했을 뿐, 그 어떠한 발표나 소통 행위도 시도하지 않은 비비언 마이어의 독특한 태도와 욕망이다. 그녀는 그동안 내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새로운 유형의 창작자이다.

허영만 작가가 28일 오전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허영만 - 창작의 비밀' 전시회 개막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창작자, 곧 작가란 무(無·일상)에서 유(有·예술작품)를 창조하는 사람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가지고 세상과 소통을 꿈꾸는 자이다. 소통을 통해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누구보다 강한 존재이다. 창작자가 지향하는 세계는 다락방의 은밀한 서랍이나 박스가 아니라 누구나 감상할 수 있는 공적인 무대이다. 그런 의미에서, 평생 대상을 사진으로 찍기만 했을 뿐 철저히 자기만의 골방에 껴안고 있었던 비비언 마이어와 그녀의 미공개 유작들을 골방에서 꺼내어 세상에 알린 존 말루프의 만남은 미지의 창작자와 수집가가 시간을 뛰어넘어 공동으로 이루어낸 멋진 신세계라고 할 수 있다.


함정임 | 소설가·동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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