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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무장세력에 붙잡혔던 한국인 관광객이 프랑스군에 의해 구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의 국민보호 책임 문제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9일 자국민 구출작전 도중 함께 억류 중이던 한국인과 미국인을 발견해 함께 구출했다. 이들은 부르키나파소에서 남쪽 베냉으로 이동하다 납치돼 28일간 억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정부가 실종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국민보호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비난이 국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부르키나파소 북부지역은 4단계로 이뤄진 정부의 여행경보 체계 중 3단계(적색경보)에 해당하는 철수권고 지역이며 남부는 2단계(황색경보)인 여행자제 지역이다. 여행 도중 불의의 변을 당해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 처한 것은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지만, 정정이 불안하고 공관도 없는 지역을 여행하다가 발생한 사건을 정부가 몰랐다고 비난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며 악의적이다.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인질로 잡혔다 구출된 한국 여성(왼쪽)이 11일(현지시간) 프랑스 빌라쿠브레 공군기지에 도착해 마중나온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가운데) 뒤에서 걸어가고 있다. 파리 _ EPA연합뉴스

지난해 기준 대한민국의 재외동포는 270만명, 해외여행객은 2870만명이다. 이들의 안전을 담당하는 정부 인력은 해당 지역 공관과 본부 인원 100여명이 전부다. 정부가 재외국민의 행적을 모두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외국민의 동선을 정부가 모두 파악하고 있다면 오히려 그게 더 큰 문제다.

지금까지 정부의 영사조력 범위와 한계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이 때문에 해외 안전사고에 대한 정부의 책임은 그때그때 여론과 국민정서에 의해 고무줄처럼 달라져왔다. 정부의 영사조력이 무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도 퍼져 있다. 해외여행 중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연료가 바닥나도 공관에 도와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일까지 있을 정도다.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올해 초 영사조력법이 제정돼 2021년 발효를 앞두고 있다. 영사업무에 대한 예산·인력의 확대도 필요하지만 이 법이 제구실을 하려면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합리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국민 스스로 일차적 안전책임을 져야 한다는 국민인식이 시행령과 시행규칙 안에 반영되어야만 한다. 이런 일로 정부를 흠집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트집을 잡는 일부 언론과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공격에 대해서는 따끔한 비판을 해줄 수 있는 성숙한 인식도 여기에 포함된다.

<정치부 | 유신모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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