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산촌에 집을 지을 때, 나무로 지을까 벽돌로 지을까 철골로 지을까 고심을 거듭. 결론은 흙으로 짓자! 기둥 골조는 철근과 나무로 단단히 일으켰으나 벽만큼은 흙벽돌을 두르고 고운 흙으로 미장을 하고팠다. 툭툭 터지고 갈라져서 애를 먹다가 전문가를 소개받고서야 야물딱지게 단장을 마칠 수 있었다. 지붕 기와를 얹을 땐 흙을 이겨 깔고 그 위에다 전통 깜장기와를 착착 붙였다. 조선사람 피부 색깔을 닮은, 남녘땅 붉은 흙으로 지은 집. 손바닥처럼 거친 흙으로 지은 집. 나와 집은 쌍둥이처럼 똑 닮았다. 뒤란 담벼락도 흙을 이겨 발랐더니 옛날 토담 비스무리 나왔다. 시방은 그 위로 넝쿨 식물이 우거져서 흙 반 넝쿨 반. 의외로 어르신들은 시멘트를 좋아하신다. 발전상으로 세뇌당하신 듯.

“절므런 양반이 집을 짓는닥해서 보기 조컸구마 기대를 겁나 했는디 금메말시 가난테 가난물이 뚝뚝 떨어져가꼬 실망이 커부렀당게라. 흙이라믄 인자 송신나게 징그랍소.” 헉, 할매집보다 수배 넓은 기와집인데 흙벽을 보고는 그리들 판단. 초가삼간 흙집, 가난했던 옛일들이 떠올랐을까. “흐칸 색(흰색)으로 싹잠(모두) 발라부쇼.” 이건 뭐 마을민원 수준이었다. 흙집은 여름에 서늘하고 겨울엔 한결 따숩지. 꽃밭 산밭도 붉은 황토와 마사가 적당히 섞인 흙밭. 양지뜸 뭘 심어도 팔뚝만 하게 잘 자란다. “아따메. 흙이 요라코롬 좋단 말이오. 남정네들 고출 싹 따다가 여그다 심으믄 볼만 허겄재라이. 요라고 실하기라도 해야재 워디. 쯔쯔쯔.” 할매들이 엉큼하게 웃으며 고추를 따담았다. 응달엔 지렁이들이 밤낮으로 일하고, 풀벌레 악단은 밤새 재즈를 연주한다. 흙에서 자란 배추는 김치가 되어 밥상에 빨갛게 올랐다.

흙으로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미술작품이 또 하나 있더군. 며칠 전 꽃다발을 들고 다녀온 화가 임옥상 샘의 전시. 흙을 발라 그린 존 버거와 윌리엄 모리스, 자화상에 쏙 반했다. 조물주 말고 나도 내 얼굴을 흙으로 그려보고 싶더군. 현대인들은 흙과 멀어졌다. 핵무기보다 병이나 자연결핍으로 죽을 확률이 억만배 높다. 존재의 원형질과 멀어진 우리들. 이런 게 바로 큰일이렷다. 잘 구운 흙처럼 건강한 그댈 위해 남녘땅 붉은 흙 한 줌 쥐여드리고 싶다.

<임의진 목사·시인>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홍 스웨터 구름과 별  (0) 2017.09.14
에코백 천가방  (0) 2017.09.07
오리알  (0) 2017.08.24
냉장고  (0) 2017.08.10
벼락 치는 날  (0) 2017.08.03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