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ㆍ후불제 인수방식·사모펀드·공매도가 ‘문제’
서의동기자
#2005년 5월27일 금융감독위원회 제9차 정례회의는 주목할 만한 결정을 내렸다. 당시 여의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던 리딩투자증권의 브릿지증권에 대한 합병을 승인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금융기관의 인수·합병이 금융감독당국에 의해 허가되지 않은 첫 사례였다. 리딩투자증권은 그해 2월 브릿지증권 지분 86.9%를 1310억원에 사들이기로 브릿지증권의 대주주인 BIH(브릿지 인베스트먼트 라부안 홀딩스)와도 계약을 맺었다. 리딩은 계약금 20억원만 먼저 받은 뒤 187억원은 인수권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리고 나머지 1103억원은 브릿지 증권을 사들인 뒤 이 증권사가 보유한 자산을 팔아 갚기로 계약했다. 자기 밑천의 65.5배나 되는 금융기관을 단돈 20억원을 투자해서 사들이겠다는 무모한 시도였다.
# ‘프리티 우먼’이란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인 에드워드(리처드 기어 분)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하는 기업 사냥꾼으로 등장한다. 그는 자산이 탄탄한 제조업체를 인수한 뒤 갈기갈기 조각내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그에게 기업을 뺏기게 된 한 기업체의 사장은 이렇게 호소한다. “나에게는 기업을 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기업이 산산조각이 나면 직원들은 어떻게 하느냐, 그리고 지역 경제는 어떻게 하느냐.” 냉정한 에드워드의 대답은 간단하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첨단금융기법인가, 사기인가
브릿지증권 합병 시도와 리처드 기어가 구사한 M&A 기법은 후불제 인수방식(LBO·Leveraged Buy Out)으로 불리는 ‘선진금융기법’이다. 인수대상 기업이 가진 부동산이나 주식, 보유현금을 담보로 금융회사로부터 돈을 빌려 인수하는 방식이다.
지렛대(레버리지)를 이용해 작은 힘으로 큰 물건을 들어올리듯이 LBO는 외부에서 돈을 빌려와 그 돈을 지렛대로 덩치가 큰 상대기업을 사들이는 전략이다. 인수한 뒤에는 사들인 기업의 자산을 매각해 돈을 갚는 경우가 보통이다. 이 전략은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크게 확산된 뒤 전세계 기업 M&A 시장에서 일반화되고 있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을 연상케 하는 기법이다. 89년 KKR라고 하는 M&A 전문회사는 담배회사인 레이놀스-나비스코를 250억달러에 인수했다. 당시 KKR는 인수대금 가운데 190억달러를 레이놀스-나비스코 자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렸다. KKR는 나비스코를 사들인 뒤 60억달러짜리 자산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대출금을 갚았다.
LBO는 90년대 기업도산이 늘어나면서 한때 위축됐으나 2000년 이후 저금리 기조하에서 다시 성장하기 시작해 2006년에는 7000억달러 규모에 이르고 있다. 전세계 M&A에서 사모펀드 LBO에 의한 기업 인수·합병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6년 17%에 달할 정도로 보편화되고 있다.
노동불안 심화
LBO는 실적을 내지 못하는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고 기업가치를 높여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반면, 사모펀드의 LBO는 인수대상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량해고 등으로 고용불안을 조성하고 우량기업까지 위협하는 부작용도 크다.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모아 조성된 사모펀드의 특성상 투자대상 기업의 장기적 발전 가능성에 주목하기보다는 단기에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주목한다. 자금을 투자해서 공장을 짓고 종업원을 고용, 상품을 만들어 실적을 내는 전통적 방식의 기업경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노동과 기술개발로 생산성을 높이기보다 ‘땀을 흘리지 않는’ 금융기법으로 주주가치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노동의 가치를 좀먹는 것이다. 사모펀드가 가령 제조업체를 인수했다면, 부동산 등 알짜 자산을 잘라 팔아버리고 청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게다가 기업인수 초기 과정에서 비용절감을 위해 대규모 감원을 하고 복지혜택을 축소하면서 노사분쟁을 초래한다. 인수 대상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여유자금을 자사주 매입에 쓰거나 배당금 증액에 사용하느라 투자축소, 경쟁력 약화를 감수해야 한다.
멀쩡한 기업 사들여 공중분해
브릿지 증권을 인수했던 BIH는 98년 대유증권을 인수한 뒤 2000년 일은증권을 다시 인수해 두 회사를 브릿지증권으로 합병했다. BIH는 외환위기 이후 주식시장이 호황을 맞은 99년 대유증권이 839억원의 흑자를 내자 BIH는 주식액면가의 70%인 주당 700원의 초 고배당을 통해 204억원을 빼내갔다. 이후 자사주 매입과 유상감자(자본금을 줄여 주주가 나눠갖는 것), 사옥매각을 통해 증권사를 껍데기만 남겼다. 마지막으로 LBO라는 방식으로 증권사 매각을 시도하려다 금융감독당국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당시 합병건을 심사했던 금융감독원 박권추 팀장은 “통상적인 LBO와 달리 브릿지의 경우 제3의 자금원이 없었고, 대주주에서 돈을 빌려서 상환하는 구조라는 점 등이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당시 브릿지증권 매각 반대를 주도했던 골든브릿지증권 강승균 노조위원장은 “매각이라기보다는 사실상 회사를 청산하겠다는 것이 당시 대주주인 BIH의 의도였다”고 말했다.
사기수법 닮은 공매도
올해 주식시장이 출렁였던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외국인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시장에 돈을 지속적으로 빼내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매도’라는 투자기법 탓도 컸다. 일반적으로 주식투자는 주식이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아 차액을 벌어들이는 방식이다. 반면 공매도는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생각될 때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뒤 가격이 떨어지면 다시 사들여서 갚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주가가 100원일 때 투자자가 증권사로부터 100주를 빌려 팔았다고 치자. 1만원의 돈이 손에 들어온다. 그런데 주가가 하락해 주당 80원이 됐다. 주식을 빌려준 증권사에는 주식으로 갚는다. 투자자는 시세와 상관없이 100주만 갚으면 된다. 그러므로 8000원으로 80원짜리 주식 100주를 사서 갚는다. 2000원을 벌게 되는 셈이다. 이런 수익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공매도가 성행하면 기업가치와 무관한 주가가 형성된다.
국내 대표적인 기업들이 지난해 7월 이후 주가가 하락을 면치 못했던 것도 이런 공매도 탓이다. LG전자는 올 3·4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4.85%나 증가했는데도 주가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주가가 23.5%나 떨어졌다.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기업이고 환율급등으로 수출경쟁력까지 향상돼 개인투자자들의 투자가 몰렸지만 공매도로 결국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된 것이다.
공매도가 성행할 당시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투자자들이 공매도를 성공시키기 위해 주식을 산 뒤 증권가에 괴담을 유포시켜 해당 기업의 주가를 더욱 떨어뜨렸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공매도의 폐해가 전세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면서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 공매도 규제가 확산됐고 한국 정부도 지난해 9월 뒤늦게 공매도 개선방안을 내놨다. 금융경제연구소 채지윤 연구원은 “공매도는 주식시장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위험천만한 투자”라며 “첨단투자기법으로 포장돼 있지만 실제로는 사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지난 칼럼===== >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1부-(8) 끝을 알 수 없다 (0) | 2009.01.11 |
---|---|
1부-(7) 금융위험에는 장벽이 없다: 파생상품 ‘시한폭탄’… 견제도 감시도 없었다 (0) | 2009.01.04 |
1부-(7) 금융위험에는 장벽이 없다: 대박 좇던 서민… ‘머니게임’ 가해자이자 피해자 (0) | 2009.01.04 |
1부-(7) 금융위험에는 장벽이 없다: 제조업체도 금융업 진출 광풍 (0) | 2009.01.04 |
1부-(7) 금융위험에는 장벽이 없다: 40년 만에 ‘금융·석유·식량위기’ 동반 (0) | 2009.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