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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1부-7. 금융위험에는 장벽이 없다
ㆍ투기자본 주연의 ‘충격·공포 드라마’


이강택 KBS PD


‘3차 오일쇼크’라는 드라마

지난해 7월 중순 유가가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배럴당 무려 147.17 달러. 연말이면 200달러로 치솟을 것이라는 ‘슈퍼 스파이크’론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지구촌을 휩쓸었다. 그러나 불과 사흘 만에 유가는 10% 폭락했고 두 달 후엔 90달러 선까지 무려 50달러나 떨어졌다. 세계 석유수요가 별로 줄지 않았음에도, 더구나 중동 산유국들이 모여 하루 50만배럴을 감산하기로 결의하고 멕시코 만 유전지대에서 생산량이 5% 줄었음에도, 송유관이 지나는 그루지야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태풍 아이크가 미국 정유시설의 25%를 손상시킬 거라는 보도에도 불구하고 석유가격은 속절없이 계속 추락했다.



그 추이를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원인은 명확했다. 금융투기세력들이 급속히 석유시장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8월로 접어들면서 뉴욕상품선물거래소(NYMEX)에서는 원유선물거래에 뛰어들었던 투기세력의 매수포지션이 급감하고 그에 따라 전체 거래 중 순매수포지션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에너지 시장에는 어마어마한 투기가 있었다. 단지 수급균형의 문제가 아니었다.” 투기거래에 깊숙이 참여했던 JP모건체이스의 투자본부장 마이클 셈블리스트가 지난 9월 부유한 투자자들에게 보낸 e메일 내용 중의 일부다. 국내외 주요 언론들이 그토록 떠들어대던 수요 급증이나 지정학적 리스크, 피크 오일 등에 의한 공급의 감소·차질이 주요 원인이 아니었음을 털어놓은 것이다. 의회의 압박으로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시작하고, 뒤이어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월스트리트에 유동성 위기가 본격화되자 투기 자본들이 대거 이탈했다. 오클라호마에 본사를 둔 셈그룹(Semgroup)의 완전 철수, UBS의 장외시장 상품거래 폐쇄,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런던시장 에너지·상품거래 중단 등이 속속 알려지면서 가격 거품은 더욱 빠르게 붕괴됐다. 속락을 거듭한 유가는 2008년 말 현재 배럴당 겨우(?) 40달러선을 밑도는 수준. ‘3차 오일 쇼크’는 중반까지 긴장감이 대단했으나 5개월 만에 끝난, 결말이 허망한(!) 드라마였다.


아이티 사람들로 하여금 ‘진흙쿠키’로 끼니를 때우게 만들었던 식량위기도 마찬가지 양상이었다. 지난 3월 부셸당 12.70달러까지 치솟았던 밀 가격은 현재 5달러 수준. 호주 곡창지대의 가뭄과 미국 중서부의 토양침식 등 미디어들은 갖가지 원인들을 내세웠지만 식량 폭등의 가장 큰 원인 역시 유가급등과 바이오디젤 열풍을 틈탄 금융투기세력의 작품이었다. 대표적 네오콘이자 세계은행 총재인 로버트 죌릭이 끝까지 언론공개를 막았던 세계은행의 비밀보고서는 심지어 식량가격 상승의 75%가 미국에서 생산된 옥수수의 3분의 1이 바이오디젤을 만드는 데로 돌려지고, 그에 따라 투기가 기승을 부린 까닭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하반기에 금융 쓰나미가 직접 모든 것을 삼켜버렸음을 종합해 볼 때, 2008년은 실로 1970년대 초반에 이어 약 40년 만에 금융위기, 석유위기, 식량위기라는 세 마녀가 동시에 출현하여 전 인류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간 역사적 시점이었다.


누구의 작품이었나 - 주연 배우들

“현재의 석유가격은 수요·공급의 펀더멘털에 기반한 것이다. 상품시장은 투기거품의 영향을 받아 움직이고 있지 않다.”( <골드만삭스 에너지리포트>, 2008·7·30)

유가가 오르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초이다. 그때까지 20달러 선에 지나지 않았던 원유는 1년 후 40달러를 돌파하고 조정기를 맞는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바로 ‘아준 무티’. 그는 유가가 장기상승국면에 들어섰다며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과감한 예측을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06년 말 그 예언이 현실화되자 ‘석유업계의 카산드라’로 불리며 명성을 얻는다. 이후 유가가 조정기를 맞을 때마다 상승모멘텀을 제공하던 그는 지난해 5월 유가가 130달러 선에서 주춤거리자 이른바 ‘슈퍼스파이크’론을 내세워 200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선언, 치솟는 유가에 불을 붙였다. 아준 무티는 바로 골드만삭스의 애널리스트였다.


주지하듯이 골드만삭스는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 기업공개 주선 등 기업금융부문과 모기지 채권 등을 다루는 자산운용 및 증권부문 그리고 상품선물 등을 취급하는 자기자본투자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자기자본투자부문은 사실상 헤지펀드와 거의 같은 활동을 한다. 그 운용자산의 규모가 210억달러이니 사실상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인 셈이다. 그처럼 엄청난 규모를 배경으로 골드만삭스는 1990년대 중반에 석유선물시장에 진출한 이후 줄곧 업계의 수위를 달렸다. 특히 2005년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연체비율 증가 등 부동산 시장에서 이상 징후가 엿보이자 원유시장에 대한 진출을 대폭 강화하여 막대한 영향력을 확보한다. 골드만삭스가 가진 영향력의 1차적 원천은 GSCI(골드만삭스상품지수)로 대변되는 인덱스투자. 각종 연기금과 뮤추얼펀드, 기업, 국부펀드 등이 참여해 무려 2600억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로 확대된 간접투자 중 60% 이상이 골드만삭스를 통해 이루어졌다.


직접투자의 위력 또한 막강했다. 자기자산의 수십 배를 차입(Leveraged Buyout)하여 그것을 5%의 증거금만으로 거래를 할 수 있는 석유선물시장에 집중했다. 대부분 거의 규제를 받지 않는 런던 역외시장(ICE)과 장외시장(OTC)에서의 스와프거래를 통해서였다.

수급동향 등 시장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기 위해 골드만삭스는 2006년 150여개의 저유소와 4만㎞가 넘는 송유관을 보유한 킨더모건사를 인수하고, ICE를 공동설립하는 등 석유 관련 인프라를 급속히 확장해갔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남들보다 앞서 장기매수 포지션을 정하고, 상승 예측을 발표해 시장을 주도했다.



ㆍ미디어들 앞다퉈 논리제공 ‘조연역’
ㆍ 전세계 국민·생산자본 상대 수탈

2007년 하반기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악화되고 달러 약세가 본격화되자 골드만삭스의 뒤를 따르는 에너지 관련 헤지펀드는 640여개로 급증했고, 간접투자를 원하는 연기금, 펀드들이 대거 시장에 유입됐다.(거래시장에 1억달러가 새로 유입되면 1.6%의 가격 상승 요인이 발생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이른바 ‘자기충족적 예언’에 의해 2007년 골드만삭스가 거둔 45억달러 순익 중 31억달러를 상회했다. 원유선물거래에서 줄곧 2위를 차지했던 모건스탠리도 유사한 수익 패턴을 보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다른 투자은행들과는 달리 2008년 하반기의 금융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9월 이후 석유시장에서의 투기가 잠잠해지자 그 둘은 일반 상업은행과 유사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안간힘을 다한 공조 - 조연 배우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의 성공 드라마는 물론 그들의 힘만으로는 연출될 수 없었다. 가장 유력한 조력자는 세계 유수의 미디어들이었다. 유가가 급등했던 지난해 상반기 내내 파이낸셜타임스, 이코노미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관련 지면을 장식했던 분석은 이른바 ‘중국·인도 책임론’이었다. 신흥공업국에서 수요가 급증해 수급이 극히 타이트해졌다는 논리였다. ‘자원민족주의 유죄론’도 뒤를 이었다. 베네수엘라, 이란 등이 기술과 자본을 보유한 서방의 석유회사들에 문호를 개방하지 않아 생산능력이 정체 또는 감소했다는 것이었다. 나이지리아, 이란 등에서의 지정학적 위기도 대서특필되며 아직 유가가 충분히 높지 않다는 주장을 뒷받침했다. 반면, 미국과 유럽에서 석유수요가 이미 2007년부터 줄고 있으며 그것이 중국 등에서의 수요 증가분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사실, 세계 원유생산량이 2008년 1·4분기에도 2.5% 늘었다는 사실, 따라서 전반적인 수급상황은 유가가 60달러였던 2006년 말과 거의 변동이 없다는 사실 등은 전혀 조명되지 않았다.


이러한 수급상황론에 대해 반론이 높아지자 새로운 논리들이 출현했다. 석유업계 및 금융업계와 연계된 연구소들에서는 “오랫동안 채굴장비와 선박들에 대한 투자와 인력양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단기간 내에 공급이 늘어날 수 없다”며 추가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었다. 부시, G8 재무장관 등이 가세하고, 감독기관인 CFTC 위원장이 나서서 “어떠한 투기의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등 풀코트프레싱이 펼쳐졌다. 뿐만 아니라 엑슨모빌 등 거대석유회사들이 정유시설 가동을 10% 줄여 인위적으로 휘발유 공급부족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관측도 유력하게 제기되었다. 흔히 마약시장 다음으로 폐쇄적이라는 석유시장. 그 불투명성은 투기를 정당화하고 부추기는 데에 철저하게 활용되었다. 세계최대의 곡물기업 카길이 여전히 비상장회사로
서 베일에 가려진 채 활동하는 국제 식량시장의 형편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이미 방영됐던 예고편 - 엔론 함정

석유와 식량 등 상품선물시장에서 투기세력의 발호는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돼 왔다. 2000년에 만들어진 ‘상품선물현대화법’ 때문이다. 이 법에 의해 장외시장, 역외시장에서의 선물거래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예를 들어 NYMEX에서는 지금도 옵션과 선물을 포함해 모든 거래가 다자간 공개경매 방식으로 이뤄진다. 모든 거래자, 거래량, 품목, 가격, 거래의 종류가 보고되며 철저한 감시와 승인 아래 이뤄진다. 그러나 장외시장에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장소와 시간, 거래 종목에 어떠한 제한도 없다. 양자간 거래이니만큼 당사자간에 합의만 하면 된다. 마치 매입자가 카운터에서 물건을 사듯 1 대 1 거래가 이뤄지므로 규제당국을 포함한 제3자들은 심지어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알 수 없다. 역외시장의 경우도 그리 다를 게 없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서부텍사스중질유(WTI)의 30% 이상이 거래되는 런던ICE에서는 모든 거래가 익명으로, 오직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 이뤄진다. 그 대부분은 양자간 스와프 거래. 거래량의 제한이나 모니터링과 보고의 의무가 전혀 없는 이 시장 에너지부문의 주요 플레이어는 씨티은행과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거대 금융 자본들이다.

상품선물현대화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주도한 기업이 바로 한때 세계 최고의 혁신적 기업이라 불렸던, 그러나 실제로는 교묘한 수법으로 회계장부를 조작해 이익을 부풀려 발표했던 엔론이었다. 그들의 로비에 의해 상품선물현대화법안은 2000년 말 의회에 제출된다. 부시와 고어의 치열한 당선자 확정 소송이 끝난 직후 금요일 밤, 회기를 며칠 남기지 않은 채 1100여개의 다른 법안에 섞여서 …. 그리고 바로 이듬해 닷컴버블이 붕괴되기 시작하자 엔론은 이 법이 제공한 규제의 사각지대를 활용해 전력을 다른 주로 빼돌렸다 되사오거나 인위적으로 전력난을 조장해 비싼 값을 받는 수법으로 엄청난 폭리를 취했다. 그것이 2001년 캘리포니아 전력 공급 중단 사태의 내막이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등으로 궁지에 몰린 금융자본들이 상품시장으로 대거 이동해 7년 전 엔론이 파놓은 함정(Enlon Loophole)을 재활용, 전세계의 서민들과 생산자본을 상대로 벌인 희대의 수탈극. 그것이 ‘3차 오일쇼크’와 식량위기의 본질이다. 탈규제가 제도화됨에 따라 ‘전염성 탐욕’은 모든 영역으로 확산됐고, 금융투기의 대상에도 경계가 없어진 것이다.


미국 헤게모니 체제의 위기, 그 불안한 미래

“식량을 지배하는 자는 한 나라를 지배하고, 석유를 지배하는 자는 한 대륙을 지배하고, 통화를 지배하는 자는 세계를 지배한다.”(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경계가 없는 금융투기는 곧 이번 위기가 얼마나 중층적이고 총체적인가를 상징한다. 그것은 금융, 식량, 석유라는 세 마녀가 함께 출렁거렸던 1970년대 초반 세계자본주의의 위기, 미국 헤게모니 체제의 위기에 버금가는 격변이 다가왔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71년 5월 계속되는 경기침체 속에서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무역적자를 기록한다. 달러투매와 자본유출이 벌어지고 결국 3개월 후 닉슨의 금태환 정지 선언이 발표된다. 그에 따라 달러화의 급락세가 계속되자 패러다임을 변화시켜 다시 ‘강한 달러’를 만들어내기 위해 키신저 등의 주도로 세계의 금융 및 정치계 내부자들의 비밀회합이 잦아졌다. 그리고 식량위기, 중동전, 1차 오일쇼크가 연이어 일어났다. 결국 4배나 폭등한 석유가 달러로만 결제되는 ‘석유-달러체제’가 만들어짐에 따라 달러의 위기가 진정되었다. 고전적 브레턴우즈체제는 그렇게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변동환율제로 이행했고, 그후 ‘강한 달러’를 바탕으로 30여년에 걸쳐 금융자본 우위의 신질서가 구축돼 왔다. 더불어 미국이 세계자본주의의 최종 소비자가 되고 중동과 일본을 위시한 신흥공업국들은 수출지향적 공업화를 추진하며 거기서 발생하는 무역흑자로 미국 국채를 사주는 국제 달러환류 시스템의 골격이 만들어졌다.


지금은 바로 그 ‘글로벌 불균형’이 다시 전반적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떤 패러다임이 새로 구축될 것인가? 지금으로선 어떠한 예측도 섣부를 것이다. 대신 무엇보다도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 미국 금융자본과 석유자본의 융합관계와 그들의 동향이다. JP모건과 합병해 JP모건체이스를 만들어낸 체이스맨해튼은행의 회장이 존 데이비슨 록펠러라는 사실, 최근 미국 구제금융 7000억달러의 총괄수탁은행으로 선정된 뉴욕맬런은행을 소유한 멜런가문의 걸프석유 소유, 엑슨모빌 주식의 73% 금융자본 소유 등에서 보듯 두 거대자본 블록은 사실상 한몸이 되어 군수, 화학, 자동차, 농업 등 전 분야의 자본과 얽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이해를 충실히 대변해온 통화주의자들 - 가이트너, 버냉키, 로렌 서머스 등 - 을 ‘검은 루스벨트’ 오바마 정부의 주요 포스트에 파견해놓고 있다. 비록 성공 여부는 알 수 없다 해도, 70년대 초반처럼 식량과 석유를 이용한 압박과 지정학적 위기 조장, 전쟁으로 달러체제의 생명 연장, 경계 없는 금융투기체제의 복구가 재시도될 필요조건이 이미 마련돼 있는 셈이다.


최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이 자행됨에 따라 유가가 소폭 반등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만약 그것이 이란이라면 사태는 어디까지 번져나갈까? 중동 발 외신기사를 접하며 조만간 훨씬 큰 규모로 유사한 사태가 재현되리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치지 못하는 건 단지 과민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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