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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어찌’를 통해서 다음 정부는 시민적 가치를 지향하는 시민의 정부가 되는 것이 지금까지의 주요한 흐름 중의 하나라는 것을 얘기하였다. 시민단체든 시민이든 ‘시민적 가치’라는 것을 전면으로 내세울 정도의 흐름을 우리가 형성한 것 같기는 하다.
촛불 시민으로부터 시작된 그 일련의 흐름이 이제는 도도한 하나의 장강이 된 지금, 그것이 새로운 가치의 출발점이 될 것 같다. 역사로 본다면 지금쯤은 민중 진영이 한 번쯤 집권하는 게 좋다고 10여년 전에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불행히도 역사는 그렇게 흘러오지 않았다. 87년 이후 20년 이상 흘렀지만, 민중 진영이 당장 집권을 하고 수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비판 세력이고, 잠재적 대안 세력이지만 당장 집권할 수는 없어 보인다.
지금 집권한다면? 나라도 뜯어 말릴 것 같다. 이명박 쪽 사람들이 무능을 보이면서 역사의 뒷물결로 흘러가는 것처럼 지금 민중 진영이 당장 집권하면 무능과 부패, 그런 역사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현실이 지금 그렇다.
민중단체가 힘을 기르는 방식은 일반적으로 국회에서 맹활약을 하거나 특정 지자체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이는 방식이다. 그러나 울산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렇다고 국회에서 맹활약하였는가? 소금의 역할은 분명히 한 것 같지만, 정치적 대폭발을 당장 기대할 정도의 맹활약은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남아 있는 길은? 연정의 파트너로 참여하여 몇 개의 부처를 장악해서 행정 관료들을 더 많이 배출하면서 현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정책에 대한 장악능력을 높이는 길이 있다. 그런 방식을 ‘캐비닛 연정’이라고 이름을 붙여보자.
정치학자들과 이런 방식의 연정에 대해서 의견을 꽤 많이 나누어 보았는데, 대체적으로 한국의 정치학자들은 대통령제 하에서 연정의 성사 가능성에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였다. 어지간한 신뢰나 고도의 조정능력이 없으면 연정은 언제라도 위기에 봉착하게 되고, 5년 동안 안정적으로 움직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서로에게 생채기만 남기고 적보다 더 미워하는 동지로 전락할 위험이 높다는 게 그들의 지적이다.
사실 동지가 돌아서면 적보다 더 깊고 오래 앙금이 남는 법이다. 지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하나의 틀로 돌아가는데, 이성보다는 감정에 남은 앙금이 더 큰 거 아니겠는가?
유럽에서의 연정은 대체적으로 캐비닛을 나누어 일종의 집단 통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좌파는 물론이고 우파도 단독으로 집권하기는 어려워서 결국 50%의 의석수를 채우기 위해서는 연정을 구성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2~3%의 지지율밖에 없던 녹색당이 환경부 장관을 차지하고, 그렇게 정부 전체의 녹색화를 주도하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 되었다. 우리도 그렇게 해볼 수 없을까?
예를 들면 민주노동당의 강기갑 의원 같은 사람이 농업을 맡고, 진보신당의 노회찬 전 대표 같은 사람이 법무를 맡는, 그런 몇 개의 타협안을 고민해보는 것이 우리에게는 전혀 불가능한 일일까?
지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국회에서 통과될 때 우리가 봤던 있으나마나한 합의문 글자 ‘쪼가리’보다는 몇 개의 부처를 책임지고 운영하는 그런 방식이 보다 더 현실적일 수 있을 듯싶다. 서로 다른 당에서 후보 경선을 하기 위해서 있지도 않은 가설정당을 만드는 것보다는 현실적으로 민주당이 대선 후보를 가지고 가고, 연정 파트너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색채와 정체성에 잘 맞는 정부 부처들을 책임지는 그런 방식이 더 생산적인 논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지 꽤 된다.
문제는 그런 걸 조정할 만한 유연성과 교섭력이 한국 정계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 9단들인 DJ와 JP 정도 되는 사람들도 중간에 연정을 깨먹었다. 누가 이런 교섭을 부드럽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게 우리의 딜레마 아닌가?
후보 선출과 단일화를 위한 논의는 게임의 논리상 언제나 불안정하고, 집권하게 되면 결국 제왕적 대통령으로 복귀하게 될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캐비닛을 나누는 방식은 선거를 조금은 더 정책 선거로 끌고 갈 것이고, 국민들도 다음 정부가 어떤 모습을 가질지, 어떻게 운영될지 훨씬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좋은 건 이런 논의가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면 시민들이 정부 구성 및 운영에 더욱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여지를 준다는 점이다.
개인의 장단점에 대한 논의로는 박근혜의 철옹성을 넘기 어렵다. 정부부처와 정부기관 그리고 공기업들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실질적 논의들이 총선과 대선으로 가는 논의들을 더 풍부하게 해줄 것 같다. 시민의 정부의 캐비닛 연정, 그런 방식으로 연정틀을 구상할 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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